마가복음 6장 45-56절(물 위를 걸으신 하나님 예수)
가. 들면서
예화)
한 철학자가 하루는 책을 읽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야 정말 기가 막힌 책이구나! 이 책을 쓴 사람은 아마 대단한 천재일거야> 라고 외쳤지요. 사실은 그 책은 바로 자기 자신이 쓴 책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말년에 곧잘 정신발작 증세를 일으켰다는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라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발작증세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를 잘 망각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우리들은 이 인간의 망각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지요.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쉬고 싶으셔도 잘 쉬지를 못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 때도 사람들은 최소 일만 오천 명 이상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가르치시며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예수님도 좀 쉴 때가 되었습니다.
나. 본문
1.예수님에 대한 군중들의 오해!(45절)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에 대해 상당한 오해가 있었지요. 요한복음에 보면 사람들은 예수의 표적을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세상에 오실 참 선지자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기를 억지로 임금 삼으려는 것을 아시고 산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기적의 초능력자로 알고 자기들을 로마의 신음에서 건져줄 정치적 메시야로 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치 활동을 위한 선동에 나선 적이 한 번도 없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군중들은 아주 골치 아픈 존재였습니다. 요즘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예수님을 골치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의미가 무언지를 잘 모르고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예수님을 잘못 아는 사람들입니다(펄시 콜레라는 분의 천국 체험! 지옥 체험!/몇 년 몇 월 예수님 오신다는 시한부 종말론자들/ 점치는 행위를 예언으로 알고 행하는 사람들/ 거칠고 상스런 소리를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하면서 거룩한 성령을 받으라는 부흥사들). 다 예수님을 골치 아프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성경이 무얼 말하는 지 실은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과 제자들을 분리시킵니다.
2. 기도하시는 예수님(46절)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렇게 군중들과 분리시켜 먼저 뱃세다로 보내신 후 자신은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가 필요 없으신 분입니다.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신데 무슨 기도가 필요합니까? 그래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표현한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장면이 없으십니다.그는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자신을 낮춰 인간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이렇게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나님 안에서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쉬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으로 바다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거스렸습니다(=휘몰아쳤습니다). 제자들은 바람을 맞으며 괴로이 노를 젖고 있었습니다.
3.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47-50절)
여기서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풍랑은 언제나 있을 수 있음을 알게됩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게 순풍에 돛단 듯 하는 것은 아니고, 예수님의 명령을 따랐음에도 곤란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문제는 풍랑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망각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늘 두려움에 잘 빠집니다. 사람은 둔감해집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금 새 잊어버렸어요. 예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직접 예수님의 온갖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풍랑을 잠재우시는 것도 이미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잠시 예수님을 망각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는 망각 증세가 잘 나타납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금새 잘 잊어버린다면 우리들은 아마 더욱 둔감할 수밖에 없지요! 제자들처럼 눈에 보이는 체험이 없으니까요. 우리들은 언제든 믿음이 둔해질 수 있는 조건을 늘 갖추고 있는 자들입니다. 조금만 나태하면 예수님과 멀어질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금 새 둔해집니다. 그래서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본문이 말하려는 의도(질문하신 내용)!
<근데 왜 힘들게 노를 힘들게 젓는 제자들을 보고도
자신의 제자들을 보고 나서도..
그냥 지나가려고 하셨을까?>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곧잘 예수님이 그런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곧잘 망각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풍랑이 다가오면 불안해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안에서 겪게 되는 풍랑은 실은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를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좋은 기회인 경우가 많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그런 경우이지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밤 사경(새벽 3-6시) 즈음에 바다 위를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 곁을 슬쩍 지나가려 하십니다. 참 재미있으신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예수님은 지나치듯 슬쩍 지나가시려 하십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 유령인가하고 소리를 질렀지요(49-50절). 예수님은 분명 곁에 계셨지만 제자들은 설마 예수님이 이렇게 물위를 걸어오시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지요.
예수님은 때로 이렇게 전혀 생각지 못하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 걱정 말아야 하지요. 하나님은 때로 우리 사람이 생각지 못하는 아주 뜻밖의 방법으로 역사하시고 돕고 깨우치시곤 하지요. 분명 하나님은 하나님 방법대로 역사하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하시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떤 식으로 하나님이 응답하실 지는 우리가 잘 모르지만 응답하실 거라는 것은 알 수 있지요. 예를 들어 대개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캄캄한 듯한데 마음이 평안해진다. 응답은 주로 평안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뜻이면 앞 길이 잘 안보여도 마음은 평안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평안을 주심으로 응답이 곧 임할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과거 제가 선교 단체에서 15년 간사로 사역하기 전 하나님은 철야 기도 중 갑자기 제게 놀라운 평안을 주시더군요. 그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나중 하나님의 응답임을 알 게 되었지요.
반대로 일이 잘 풀리는 듯 해도 마음이 답답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라는 신호입니다.
예수님께 빨리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바람이 그치는 것입니다.
4. 바로 예수님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51-56절)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폭풍은 금 새 가라앉았습니다. 둔해진 사람들 예수님의 기적을 깜빡 잊었던 것이지요.예수님이 잠시 모르는 척했던 것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얼마나 필요한 가를 알려주시려는 예수님의 배려입니다. 귀한 것은 그 귀한 것이 우리 곁을 떠난 다음에야 그 귀한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물, 공기 뿐 아니라 심지어 볼펜 한 자루 조차도 필요할 때 없으면 그 귀한 것을 압니다. 제자들은 떡을 떼어 오천명을 먹이시던 그 능력의 주님을 금 새 망각했던 것이지요.
다. 본문의 도전과 교훈
예수님은 여전히 위대한 의사이며 치료자이십니다(53-56절). 게네사렛 사람들은 심지어 환자를 침상 채 들고와 고침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도시든 시골이든 가리지 않고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고 치료하셨으며 심지어 예수님 옷에 손이 닿기만 해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거라사 사람과 게네사렛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모두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직 잘 모른 다는 점에서는 같았으나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님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동네에서 몰아내었고 게네사렛 사람들은 거라사 사람들과 달라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굳게 믿었습니다(본문).
물론 예수님은 그저 풍랑을 멈추게 하거나 병을 고쳐주시러 오신 분은 아닙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죽음과 저주에서 우리를 건지러 오신 사랑의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 나라의 족보인 생명책에 우리 이름을 올려주시러 오신 분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병 치료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본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병 치료 받아도 결국 인간은 다시 병들어 죽게 마련이지요. 그럼에도 예수님은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지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모두 고쳐주셨던 것이지요! 치유해주시는 목적은 그 치유를 통해 예수님을 더 가깝게 알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 치유를 통해서 깨달으라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예수님은 크고 작은 풍랑과 같은 문제를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점점 더 우리들이 바로 알기를 원하십니다.
영어 속담에 ‘사람이 일하면 사람만이 일할 뿐이나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말이 있지요. 늘 주님을 의지하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KICT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