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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돕기, 잘못하면 신성모독의 벨사살 왕 술잔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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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완 교수 제공

북한 돕기, 신성모독의 참람한 벨사살 왕 술잔이 될 수 있다

 

성경적으로 북한 어떻게 도울 것인가- 걱정 되는 북한 돕기(조덕영 박사)

 

 

다니엘 5장에 보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후손 벨사살 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가 큰 잔치를 베풀고 귀빈 1천명을 초청하여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그릇들로 귀빈과 아내와 첩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우상의 신들을 찬양한다. 이 예루살렘 성전의 기물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들이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다가 벨사살 왕은 그날 밤 바로 그만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페르시아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창조주 하나님에 무지한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것들에 대해 얼마나 경솔한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학교였던 평양의 숭실 건물은 김일성 대학 터가 되어 있고 장대현교회는 평양학생소년궁전으로, 산정현교회는 평양지하철 승리역과 평양제일 백화점, 그리고 창동교회는 평양의 공산혁명박물관이 되어 있다. 그러니 김일성 부자의 시신은 혹시 교회의 강대상 터나 찬양대 자리 위에 푸르둥둥 포르말린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으로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곳을 한국의 많은 목사와 신자들이 멋모르고 밟았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귀중한 헌금이 벨사살 왕의 술잔으로 변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바르고 지혜롭게 북한을 도와야 한다. 필자는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데는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 개척 시부터 지속적으로 북한 선교를 위해 매달 기도와 물질로 도왔다.

 

반드시 도와야 한다는 전제는 우리 한민족 모두의 공통된 마음이다. 따라서 아무에게나 대고 반통일 세력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그런 이상한 말을 함부로 쓰는 사람들 빼고 이 땅에 선량한 백성 치고 반통일 세력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반통일 세력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토착 왜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그들의 관점이라면 토착 왜구 중 토착 왜구인 일본 군복 만들던 외할아버지를 둔 일명 재포출신에게서 태어난 김정은, 김여정 남매에게 계몽군주”, “팬클럽 회장하겠다며 굽신거린다. 이율배반도 이런 이율배반이 없다. 이런 얼치기 좌파들은 토착왜구라는 말을 자유민주주의 시민이 아닌 김정은 남매가 가장 혐오하고 분노한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와야할 것인가?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별히 하나님의 것이 벨사살 왕의 술잔이 되면 안 되겠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어떻게 북한을 돕는 것이 지혜로운 성경적 도움인가?

 

첫째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마 25:40절)이라 했다.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 성경적이다. 예수님은 친히 지극히 작은 자의 범위까지 알려주셨다(마 25:35-36). 형제 된 자요, 나그네 된 자요,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옥에 갇힌 자들이라 하였다.

 

따라서 주안에 형제 된 자들과 영양 불균형 때문에 고통 받는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을 먼저 지원하는 것이 옳은 방향일 것이다. 이들에게 직접 전달 가능성이 많은 분유와 옥수수라든가 의료장비, 항생제와 장티프스, 말라리아, 결핵약 등과 같이 북에 시급히 필요한 것들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 달러를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성경적인 지원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런 선교 단체들이 많이 있다.

 

견디다 못해 죽음을 무릅쓰고 떠나오는 탈북자 문제 또한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문제다. 오죽하면 정든 땅을 떠나겠는가! 정부는 민감한 정치적 이유와 변명을 하면서 혹시 이들을 외면하드라도, 교회는 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돕다 김동식 목사가 안타깝게 순교했다. 지금도 우리 선교회 사무실을 자주 들르던 다리는 조금 불편했어도 키 크고 씩씩하고 정의에 넘치던 김 선교사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런 면에서 북한을 돕겠다는 우리 정부의 대북한정책의 의도는 백번 좋으나, 유람선을 띄우고 생 달러를 갖다 바치는 식은 전혀 옳지 않다. 더구나 겨우 금강산유람관광 일 년여 만에 한국 최고의 재벌이 거덜난 북쪽 정권에게 금강산 관람 비용을 할인 좀 해 달라고 역으로 달러를 구걸(?)하는 희대의 코미디가 벌어진 것은 분명, 정부의 실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로 보인다. 절대로 배부른 북한의 공산주체귀족들을 도우면 안 된다. 과거, 교활한 정치인들과 분별 못하는 우둔한 목사들과 기업인들과 종교인들은 북한을 돕는다면서 엉뚱하게 북한의 당 간부와 귀족들을 도왔다. 그들은 한 번도 굶주린 적이 없는 자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그들을 도왔던 사람들보다도 풍성하게 철저한 독재의 품 안에서(?) 잘 살고 있다. 이들은 실은 지극히 큰자(?)들을 도왔던 셈이다. 그들이 아니라 북한의 선량한 백성(강도 만난 이웃)들을 도와야 한다.

 

사업이라는 것이 본래 머리를 짜내어 최선을 다해도 그리 수익을 올린다는 게 불확실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이익의 상당 부분을 미리 북측에 떼어주고 시작하는 북쪽 사업이라는 것이 이익을 남기기 어렵다는 것은 경제의 문외한이 보아도 뻔 한일이다. 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가장 미련한 방법으로 그렇게 달러를 퍼주는 무지에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경제인들의 판단과 인식이란 것이 본래가 북한 아이들의 볼에 살이 통통 오르기 전까지는 금강산을 오르지 않으리라는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 만도 못하다는 말인가. 돈벌이에 능한 재일교포, 중국, 일본, 러시아 상인들이 왜 북한 투자를 망설이는 가를 그렇게도 눈치 채지 못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상대로 당 간부 귀족들을 도우며 돈벌이에 나설만한 무슨 커다란 신앙심, 애국심이라도 있단 말인가?

 

과거 성도들의 헌금을 가지고 목회자들이 기도한다는 명목으로 금강산에 떼 지어 몰려갔다. 그리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예수님이시라면 그쪽으로 달려가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오히려 관광을 통제당하는 상황 가운데서 남쪽의 주의 종들까지 달러를 버리면서 희희낙락하는 모양새는 민망하기까지 했다. 지혜롭게 북한을 도와야 한다. 금강산 유람이란 고향을 그리다 지칠 대로 지치신 실향의 어르신들께나 양보해야 될 일이었다. 그분들이야말로 열심히 보내드려야 했다. 하지만 필자가 목회했던 우리 장로님은 필자의 설교를 듣고 그리운 북녘 땅을 가시지 않았다. 금강산 땅 밟고 기도하라고 돈을 주고 떼밀어도 필자는 결코 가지 않았다. 그런 돈이 있다면 북방 선교 일군들에게 조용히 보낼 일이었다. 산에 오를 라면야 관악산, 북한산도 있고 지리산, 설악산도 있다. 꽃 제비들이 눈에 선한데 어찌 금강산을 밟겠는가!

 

둘째로 남북교류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한반도 땅을 건강하게 지켜내야 한다.

 

땅을 더럽히는 쪽으로 남북교류가 이루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 이미 동구(東歐)의 이념이 무너진 후, 동구의 환경오염 문제가 서유럽 못지않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졌다.

 

북한은 서유럽의 쓰레기까지 수입하는 환경 문제에 관한한 윤리를 저버린 국가였다. 그나마 동구는 서유럽의 쓰레기를 수입할 만큼 자존심을 팽개치지는 않았었다. 북한이 고철과 깡통, 플라스틱, 고장 난 전자제품 쓰레기, 유효기간이 지난 통조림 몇 점을 얻는 동안 유럽은 처치 곤란한 쓰레기를 간단하게 떠넘기면서 온갖 병․세균, 미생물들로 오염된 각종 유럽의 고기와 쓰레기들도 함께 떠넘겨 우리의 북쪽 땅을 더럽혔다. 선․후진국간 특정한 폐기물들의 이동을 금지한 바젤 협약 따위는 그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대만의 핵폐기물과 광우병이 의심되는 고기조차(물론 그 가능성은 희박하기는 하나) 북쪽 당국이 군침을 흘리는 품목이 되었다. 현대가 보낸 달러는 도대체 어디에다 쓰길 래 이 지경이 된 것인지 참 궁금했다. 진보 쓰레기 단체들은 모두 어디 갔었나? 대만 핵폐기물 쓰레기 입북을 막은 것은 진보쓰레기 환경 단체들이 아닌 양심 있는 전 세계인들이었다.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볼 때에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북한의 임목축적량은 남쪽의 3분지 1에도 훨씬 못 미칠 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황폐화 되어 있다. 준비 안 된 금강산 개발이나 나진 선봉 개발, 개성 공단 추진 등이 북쪽의 환경 파괴에 가속도를 붙였다.

 

금강산은 우상 낙서로 어지럽게 변했고 앞으로 제대로 관리 되지 않은 핵폐기물들은 김일성왕국의 귀족들도 피신할 만큼 우리 북한 땅을 비극의 땅으로 만들어버릴 지도 모른다. 무분별한 핵 실험 덕분(?)에 이미 백두산 마그마는 꿈틀대고 있다. 이 뿐 아니라 2020년 태풍과 홍수로 이미 그 재앙의 전조가 보이고 있다.

 

중국의 사막화도 빠른 속도로 동진(東進)화하고 있다. 앞으로 2, 30년 뒤 중국의 수도 베이징 변방이 사막으로 변할 것이라는 조금 과장된 전망이 나올 정도로 베이징에서 북쪽으로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사막은 매년 3.5킬로미터씩 남쪽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전 국토의 27%가 사막인 중국의 사막 가속화로 한반도의 황사현상은 매년 악화될 것이 불기피할 전망이다. 비상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가운데 지금 북한 임야의 황폐화는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북한 산야

한 때 세계 제 3의 내륙 호수를 자랑하던 중앙아시아 아랄 해의 수량이 감소하면서, 아랄 해의 대부분이 지도상에서 소멸되어 가고 있다. 그 와중에 진한 염분과 농약성분(인근 지역은 세계 제 3위의 면화 산지로 과거 엄청난 농약이 투여되었다)을 포함한 모래 먼지는 파미르 고원과 천산 산맥을 넘어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 그리고 중국 서부의 신장과 내몽골 자치주를 덮고 있다. 중국 당국은 황사의 주범을 오히려 중앙아시아 탓으로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 심각한 모래 먼지가 한국의 봄날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 주범들이다. 이렇게 환경의 문제는 국경을 초월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십 수 년 간 우리 당국이 직접 나서 북한의 환경 문제를 제대로 걱정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북한에 공단만 세워준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정말 대북 담당자들은 모르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주신 우리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권리와 자유를 북한 동포들도 누리는 날이 빨리 오도록 그들을 도와야 한다.

 

최소한의 언론, 출판, 결사, 집회, 종교, 거주 이전, 직업 선택의 자유만이라도 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런 기본적인 자유가 본래 인간에게는 있는 것이라는 것만이라도 같은 피를 나눈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든 알고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인권의 문제는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이다. 예수님은 헤롯이나 빌라도와 산헤드린멤버들과 결코 타협한 적이 없다. 조그만 인권 문제에도 그리 난리를 치던 시민단체, 인권단체들은 모두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최근, 해 마다 최소 1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재판 한번 없이 북에서 처형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 3분지 1 이상이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처형이다. 북한 인권에 대한 외부의 소극적 자세의 대가가 이런 참형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그들에 빚을 졌다. 우리 모두는 소극적 공범인 것이다. 짐승만도 못한 대우 아래, 짐승만도 못한 모습으로 순교의 길에 들어선 수많은 성도들의 피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피 값을 찾으시면 어찌 하겠는가! 예수님처럼 피 같은 눈물은 흘리지 못해도 우리 남쪽의 모든 형제들은 어떤 식으로든 참회해야 한다.

 

정책당국자들도 마찬가지다. 동독을 도우면서도 인권문제는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과거 독일 정부의 흔들림 없는 입장을 교훈삼아 그들의 도덕성의 절반만이라도 우리 당국자들이 따르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반드시 도와야 한다는 전제는 옳다.

 

다만 어떤 식으로 바르고 지혜롭게 도와야할 것인가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한국 최고 재벌을 겨우 1년여 만에 휘청거리게 만들고, 그에 따라 나라 전체를 일렁거리게 만들고, 국민들에게 부담은 몽땅 떠넘기고 카지노라도 허락해서 지원하는 그런 가장 어리석은 방법을 선택해선 안 된다. 그런 우둔한 처방 정도라면 초등학교 나온 사람을 앉혀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일 인기 전술과 정권 연장을 위한 방책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런 식의 도움과 정책을 펴왔다면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이다. 어두움을 연장하여 지극히 작은 자들을 더 목마르게 하는 햇볕이 아니라 어두움을 밝히고 싹을 틔우는 현명한 햇볕이 되어야 한다. 공산 귀족들에게만 따뜻한 햇볕이요 북한 주민들에게는 목마름을 더하는 땡볕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게 지금까지 정치인들과 어리석은 종교인들이 도운 방식이었다.

 

정치인들이야 원래가 정치 공학적이요 정치적 계산에 능한 자들이다. 그러니 그렇게 도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 도와서는 안 된다. 분명히 뱀처럼 지혜롭게 도와야 한다. 결코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잔을 벨사살의 술잔으로 만들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코 벨사살 왕을 돕는 식의 그런 미련을 원하시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 최근 우리 공무원이 해상에서 총살 당하고 시신은 불에 태워 바다에 방치되었다. 여기 과거 필자가 쓴 원고를 일부 수정하여 게재한다. 

 

* 출처: 언론 기고문(일부 수정)

* 성도들의 귀한 헌금이 신성모독의 벨사살 왕 술잔으로 되돌아오는 참람한 일은 절대 벌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 이 기고문 이후 한국 최고 재벌 현대의 회장은 자살하였고 금강산에서는 우리 국민들이 감금 등 수모를 겪었고 급기야 총기 살해 사건이 발생하였으며 우리 국민의 모든 선의의 도움은 흉기가 되어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 <북한 도와야 합니다! 다만 제발 뱀처럼 지혜롭게 도웁시다!>

 

잘못 도우면 당신이 바친 하나님의 귀한 헌금이 신성모독의 벨사살 왕 술잔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조덕영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