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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2,3,4권 주요 부분 요약(칼빈의 생애와 사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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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생애와 사상 2(기독교강요 2,3,4권 주요 부분 요약)

 

 

제네바 종교개혁 4인방 석상(파렐, 칼빈, 베자, 녹스)

 

제 2권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요약- 교육용/ 조덕영)

기독교 강요 제 2권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

 

 

 

제 1장 아담의 반역과 타락으로 전 인류는 저주 아래 있게 되었고 그 원상태가 부패하였습니다!

 

 

(1-3, 우리 자신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자기 과신을 타파한다)

1.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자신에 대한 그릇된 지식과 바른 지식)

1) 본래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어떻게 풍요롭고 사랑과 자비로 창조하셨지를 기억하라!

2) 아담의 타락 후에 닥친 인간의 비참함을 기억하라!

 

 

2. 인간은 자기 도취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다

1) 자기 자랑

2) 교만함

3) 감언이설에 잘 속는 습성

 

 

3. 자기 인식이 갖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점

1)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인간의 참된 의무와 본질에 대한 깊은 묵상

2)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임무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깨달음

 

 

(4-7 아담의 죄로 인해 인간은 본래 받은 것을 상실하고 전 인류의 파멸을 초래하였다)

4. 인류의 타락역사가 보여주는 인간의 죄: 불순종(창 3장)

1) 하나님의 심판으로 볼 때 인간의 죄는 가벼운 죄가 아닌 극악한 죄이다.

2) 마귀의 유혹에 속은 불순종(롬 5:19)

3) 불신

 

5. 원죄로서의 최초의 죄

1) 피조물이 함께 신음(롬 8:20)

2) 후손에 전해진 생득적 부패(시 51:5)

 

6. 원죄는 모방에서 오는 게 아니다.

1) 아담으로 인한 인간 본성 뿌리가 타락(롬 5:12)

2)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

3) 한사람의 불순종(아담)과 한사람의 순종(그리스도, 고전 15:22)

 

 

7. 죄의 유전

1) 우리는 부모로부터 죄 있는 자녀로 태어난다(어거스틴, 엡 2:3; 요 3:6)

2) 유아는 전혀 죄 없이 태어난다는 펠라기우스 사상은 잘못된 것이다.

3)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롬 5:12)

 

(본성의 타락으로 정의된 본성은 심판을 받아 마땅하나 이것이 창조 당시의 본성에서 온 것은 아니다 8-11)

 

8. 원죄의 특징

1) 원죄는 우리 영혼의 모든 부분에 퍼져있는 우리 본성의 유전적인 타락과 부패이다.

2) 원죄는 우리에게 육신의 일(갈 5:19)에 빠지게 만들며 음행과 호색과 도국질과 살인과 열락 등은 죄의 열매(갈 5:19-21)이기도 하며 그냥 죄라고도 한다.

3) 그러므로 인간은 영혼부터 육체에 이르기까지 전존재가 정욕으로 더럽혀진 존재이다.

 

 

 

9. 죄는 인간 전체를 전복시킨다

1) 원죄를 나타내는 로마서 3장(1-21절) 전체

2) 육체와 관련된 생각은 모두 하나님과 원수(롬8:7)요 따라서 사망에 이fms다.

 

 

 

10. 죄는 우리의 본성이 아니고 그 본성의 타락이다

1) 죄는 우리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죄는 우리 육체의 허물로부터 왔다.

2)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내었다(전 7:29)

 

 

 

1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성의 본질적 타락

1) 타락이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유래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부패한 것은 선천적 타락 때문이다.

 

 

 

스위스 제네바 칼빈이 설교하던 강대상(생피에르교회 내)

 

 

칼빈의 기독교 강요 제 3권

(Calvin: Institute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 Ⅲ)

 

제 1-2장 및 6-10장 요약(조덕영)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방법:

어떤 유익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어떤 결과가 따르는가?

 

 

제 1장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은 성령의 신비한 역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다.

 

 

1.우리를 그리스도께 연합시켜 주시는 띠로서의 성령

 

성령은 그리스도와 우리를 효과적으로 결합시켜 주는 띠(bond)이다. 바울은 깨끗게 하심과 의롭다하심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상령 안에서” 이 두가지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2.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어떻게 받으셨는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아들을 생각해서 성령을 주시지만 아들에게 성령을 하염없이 주심으로써 아들의 그의 너그러우심을 대행하는 봉사자와 청지기로 삼으셨다. 그러한 이유로 성령이 때로는 “아버지의 영”으로 때로는 “아들의 영“으로 불려진다.

 

3.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칭호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한다. 그러므로 “양자의 영으로 불리워진다. 같은 이유로 ”보증이며 인(印)“이라 불리우신다(고후 1:22). 또한 성령은 의로 말미암은 ”생명“이라 불리운다(롬 8:10). 자주 ”물“이라 불리우고 ”불“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성령은 하늘에 속한 모든 부요가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와 우리에게 미치는 ”샘”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으로써 그의 힘을 행사하시는 “주의 손”(행 11:21)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성령의 은혜와 능력에 의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써 자신을 그리스도께 복종 시킬 수있고 역으로 그리스도를소유 할 수도 있게 된다.

 

4.성령의 역사로서의 믿음

 

믿음은 성령의 가장 중요한 역사이다. 따라서 성령의 능력과 역사하심을 표현하기 위해 보통 사용되는 언어들은 주로 믿음과 관련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성령의 거룩케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다고 말한 구절(살후 2:13)을 통해, 믿음은 오직 성령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제2장 믿음:그 정의와 속성에 대한 설명

 

(그리스도는 믿음의 대상이시다.)

 

1. 진실로 믿음이란 유일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것”(요 17:3)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광채가 우리에게 빛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여젆 우리로부터 떨어져 계신 분이다.

 

2.믿음은 신앙심을 빙자한 무지에 있지 않고 지식에 근거한다.

 

스콜라철학은 맹신을 만들어내었다. 참된 믿음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화해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자비로우신 아버지가 되신 것(고후 5:18-19)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와 거룩함과 생명이 되셨다는 것을 알 때 구원을 받는다.

 

3.“맹목적”(implicit) 믿음이라는 로마 교회의 교리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굴종된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요 17:3)에 근거한다.

 

4.바른 믿음 조차도 언제나 오류와 불신에 쌓여 있다

 

성경에는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해주는 모호한 구절들이 있다. 하나님은 이런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한도를 벗어나지않고 배우려는 태도를가지게 만든다.

 

5.믿음의 필수적 선행 조건으로서의“맹목적” 신앙

 

맹목적 신앙이란 다시 말해서 신앙의 준비단계라 할 수 있다. 성경은 초보적인 원리를 모르는 자들조차도 들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믿는 자들”이라는 말로 불리웠다(요 4:42).

 

6.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다.

 

바울은 믿음과 가르침을 불가분의 동반자로 여긴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아는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7.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서 생겨난다.

 

단지 하나님의 뜻을 조금 아는 것으로는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두려운 하나님 만을 안다면 그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자비와 진리(mercy and truth)의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8.형성된(formed) 믿음과 미형성된(unformed) 믿음

 

믿음은 경건한 성향과 관련된다. “믿음의 순종”(obidience of faith, 롬 1:5)이 필요한 것이다.

 

9.고린도전서 13:2 “형성된 믿음”과 “미형성된 믿음”의 차이에 대한 증거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전 13:2)라는 바울의 말처럼 믿음과 사랑은 분리되지 않는다.

불경한 자들에게도 모종의 지식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은 오직 한가지이다.

믿음이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거나 경멸하지는 않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체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10.“미형성된” 믿음이란 믿음의 환영에 불과하다.

 

믿음의 그림자 내지 영상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믿음으로 부를 가치가 없다.

마술사 시몬(행 8:18)이나 잠시 믿다가 시들어버린(눅 8:6-13) 자들은 말씀을 약간 맛보고 자극을 받아 탐욕스럽게 말씀을 움켜잡음으로써 거룩한 힘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믿음이 있는 줄로 착각할 뿐이다.

믿음의 그림자로 자랑하는 자들은 마귀보다 나을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귀들조차 알고 떠는(약 2:19) 사실들을 듣고 떠는 일에도 둔감하다.

 

11.버림받은 자(the reprobate)에게도 믿음이 있는가

 

주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명백히하고 그들이 변명할 수가 없게 하시려고 양자의 영은 주시지 않지만 그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는 정도까지는 그들의 마음 속으로 슬그머니 들어가신다.

신자들은 자만심이 들어와 믿음의 확신을 몰아내고 대신 자리잡지 못하도록 자신을 주의깊고 겸손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12.참믿음과 거짓 믿음

 

믿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아는 것이고 그 자비의 신실성을 확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 은혜의 빛이 있다.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나무가 처음에는 꽃과 잎을 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은혜의 빛을 조금 비추다가 나중에 그 빛이 소멸되어 버리며 시드는 것과 같다. 이것은 참 믿음이 아니다.

사울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즐거워하고 마음이 빼았겼으나(삼상 9-11장)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아들로서의 사랑에 답하지 못하고 마치 고용인처럼 살았던 것이다.

 

13.성경에 나오는 믿음이란 단어의 다양한 의미

 

믿음이란 단어는 모호하다. 단순히 경건에 대한 건전한교리를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를 세상과 구별지어주는 그러한 종류의 믿음이 있다. 이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며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기며 영원한 구원이며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울 안에 거하실 수 있게 한다.

 

14.보다 고상한 지식으로서의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은 감각을 훨씬 초월한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확신하고 있을 동안에는 그확신의 바로 그확실성으로 인해 그것이 그 자체의 능력으로써 어떤 인간적인 것을 지각할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믿음이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길이가 어떠함을 깨닫는 능력이라고 아름답게 묘사한다(엡 3:18-19).

 

15.믿음은 확실성을 내포한다.

 

믿음은 애매한 것이 아니다. 확실하고 견고한(sure and form)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감미로움을 알아야 확신감은 생겨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다(엡 3:12)

.

 

16.믿음의 확신

 

믿음에 확신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양심을 담담하고 평온하게 만드는 일종의 보증로서의 화평(롬 5:1)을 가진다.

 

17.시험과 싸울 때의 믿음

 

신자들은 무거운 시험에 억눌려 꺾이고 짓이김을 당할 지라도 끊임없이 일어서고 진리의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않고 말씀을 붙든다(시 119:43).

 

18.신자의 내면적 갈등

 

신자는 혹시 내면적 갈등이 있기는 하나 그로 인해 믿음을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는다.

 

19.약한 믿음도 참믿음이다.

 

처음에는 비록 지극히 작은 믿음일지라도 우리 마음 속에 스며든다면 우리는 우리에 대해 화평하고 평온하며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을 명상하기 시작한다.

 

20.믿음의 약점과 강점

 

우리가 육신의 짐을 지고 신음하는한 믿음은 늘 불완전하다.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통해 시야를 가리는 수건 벗은 얼굴로 하나님을 보며 그 결과로 바로 그의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선포한다(고후 3;18)

 

21.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방패이다.

 

믿음은 공격들을 견디어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강화한다.

어던 종류의 유혹이 우리에게 엄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적대적이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하고 생각하게 만들 때 믿음은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지만 진노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징계를 주시므로 여전히 자비로우시다고 대답한다.

 

22.옳은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켜 악행에 연루되지 못하게 하신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 까 조심해야 한다(고전 10:12, 롬 11:20).

 

 

23.두려움과 떨림

 

사도가 두렵고과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가르칠 때 사도는 우리가 주의 권능을 높이며 자기를 대단히 낮추는 것이 습관화되도록 하라고 요구한다.

 

24.믿음의 확실성이 확고 부동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끊을 수 없는 교제의 유대로 우리와 결합하실 뿐 아니라 놀라운 영적 교제에 의해서 날이 갈수록 더욱더 우리와 한 몸이 되시며 마침내는 우리와 완전한 하나가 되신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믿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다.

 

 

25.믿음의 두면에 대하여 베르나르드가 한 말

 

“나는 하나님의은혜로 간혹 나의 영혼을 반성합니다. 두 가지 반대되는 양상이 있습니다. 수치와 혼미가 가득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속을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필경 우리의 무엇인가가 하나님의 마음 속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인지를 두가지 점에서 검토 한다면 한편으로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요, 다른 편으로 보면 크게 여김을 받는 다는 것을 검토해 보면 우리의 자랑은 적어 보니겠지만 이전에 비해서 아마 더 크고 근거도 훌륭할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자랑하리라고 믿습니다(고후10:17).

 

26.하나님을 경외함과 하나님을 공경함

 

여호와를 경외함에 대해서는 모든 성도가 증언하며 어떤 곳에서는 이것을 지혜의 근본이라하고(시111:10 : 잠1:7) 다른 곳에서는 지혜자체라고 한다(잠15:33 : 욥28:28).여호와를 경외함은 하나이지만 그 근본의미는 이중적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주의의로서의 경외를 받으실 고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주께 대한 우리의 경외는 공경과 두려움이 섞인 것이 되어야 한다.

 

27.자녀의 두려움과 종의 두려움

 

악한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벌을 주시는 권능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그의 진노에 대해서 말만 들어도 무서워 떤다. 그러나 신자들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을 벌보다 더 두려워하며 마치 벌이 목떨미 위에 얹쳐 있는 듯이 벌에 대한 공포심을 느끼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벌받을 일을 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한다.

 

28.믿음이 확약하는 것은 지상의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서 구원과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안다.

모든일이 우리의 소원대로 잘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이나 증오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우리의 행복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따라서 불행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에게 아버지의 얼굴같이 비친다면, 우리의 불행은 우리의 구원을 돕는 수단이 될 것이므로 불행이 곧 행복이 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여러 가지 불행을 말하면서 그런 불행에 의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고 자랑한다(롬8:35,39).

 

29.하나님의 약속이 믿음을 지탱한다

 

믿음의 기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를값없이 준다는약속이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왔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명령과 금지, 약속과 경고 등 모든 일에 참되시다는 것을 확신한다.

 

 

30.믿음이 은혜에 대한 약속만을 토대로 삼는 이유

 

값없이 주신 약속에 도달하기까지는 믿음이 견고하게 설 수없다.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연결하지 않으면 믿음은 우리와 하나님을 전연 화해시키지 못한다.

이 두가지는 참으로 중요하다.

 

31.믿음에 대하여 말씀이 가지는 의의

 

나무의 열매를 위해서 뿌리가 필요한 것같이 믿음을 위해서는 말씀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행하신 일들에 대한 생각은 말씀이 없다면 실체를 알 수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의 증거로 조명해주시지 않는다면 어떤 믿음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32.믿음의 약속은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되었다

 

사도는 복음 전체를 그리스도를 아는지식에 포함 시킨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율법의 제사의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였다,

 

 

33.말씀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에 효과를 나타낸다

 

우리의 마음이 어둡고 악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말슴의 외부적인 증명 만으로도 우리의 믿음을 불러일으키는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리를 이를 수 없게 되었다.

오직 성령 만이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를 점진적으로 성장하게 하며, 드디어 우리를 믿음으로 인하여 천국에 가도록 인도하신다.

 

34.성령만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신다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고전 2:11) 아무도 사람의 뜻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 수 있다.

 

35.사람은 성령이 없이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

 

바울은 우리 본래의 마음에는 없는 믿음 자체를 “믿음의 마음”(고후 4:13)이라고 부른다.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믿음은 화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36.마음의 문제로서의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믕로 받아들이려면 그 말씀이 두뇌의 상층부에서 돌아다녀서는 안되고 마음의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바울은 소망의 확신과 담대함에 대해서 말하고 성려으이 보증이 그 확신의 기초라고 한다.

 

37.의심은 믿음을 질식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오 환란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다. 우리들에게 두려울 것은 없다. 다윗은 고난 중에서도 늘 평온하고 횅복한 생활을 하였다.

 

38.믿음의 확신에 대한 스콜라 철학자의 오류

 

각 사람이 스스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스콜라 철학자들은 그릇되었다.

하나님게서 누구를 사랑으로 안으시는가를 판단하려 한다면 그는 헛수고를 하는 것이다.

 

39.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내주(內住)를 기뻐한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감동받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이 종이 아니다.

 

 

40.우리가 끝까지 견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확실치 못하다는 생각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믿음의 본성은 현세 생활이 지나간 후에 있을 미래의 영생을 바라보는 것이다.

 

 

41.히브리서 11:1에 있는 믿음

 

히 11장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다.

사람의 믿음이 깨우침을 받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되면, 그것과 동시에 어떻게 하나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보답하지 않을 수있겠는가?

스콜라 철학자들이 사랑은 믿음과 소망보다 먼저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 속에 처음으로 사랑을 일으키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42.믿음과 소망은 서로 연결된다.

 

믿음은 소망의 토대요 소망은 믿음에 영향을 주며 힘을 준다.

소망은 믿음에 힘을 주어,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그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도록 한다,

소망은 끊임없이 믿음을 갱신하고 회복함으로써 믿음에 견인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43.믿음과 소망은 하나님의 자비라는 동일한 토대 위에 섰다.

 

성경은 간혹 “믿음”과 “소망”이란 이름을 서로 바꾸어 사용한다.

소망의 목표는 믿음의 목표와 같다. 믿음의 유일한 목표는 하나님의 자비이다.

 

 

제 3장

믿음에 의한 우리의 중생:회개

 

 

1.믿음의 결과로서의 회개

2.회개의 근거는 복음에 있으며 믿음은 복음을 받아들인다

3.즉임과 살림

4.율법 하의 회개와 복음 하의 회개

5.회개를 정의함

6.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

7.회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생긴다.

8.죽임과 살림은 회개의구성부분이다.

9.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

10.신자들은 여전히 죄인이다

11.신자들 속에서 죄는 지배력을 잃었으나 여전히 살아있다.

12.“타고난 부패”란 무슨 뜻인가

13.신자들이 여전히 죄인인데 대한 어거스틴의 증언

14.완전성이란 환상에 반대함

15.고린도후서 7장 11절에 있는 회개

16.외면적인 회개와 내면적인 회개

17.회개의 외면적 실천이 주된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18.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에 대해서

19.회개와 용서는 서로 관련되어 있다.

20.어떤 의미에서 회개는 용서의 선행 조건인가

21.회개는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22.용서할 수 없는 죄

23.두번째 회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24.용서 받을 수 없는 자들은 회개할 수 없는 자들이다.

25.가짜 회개와 진짜 회개

 

 

 

 

 

 

제 4장

복음이 순수성과는 거리가 먼 스콜라 궤변가들과의 회개론;고해와 만족설(보속설)을 논함

 

1.회개에 관한 스콜라 교리

 

2.회개에 관한 스콜라 교리는 양심을 괴롭힌다

 

3.죄인의 통회가 아니라 주의 자비가 기다리고 있다

 

4.고백하라는 명령은 없다:깨끗함을 받은 나환자들에 대한 스콜라파의 은유적 추리를 반박함

 

5.나사로를 풀어준 것을 곡해한다

 

6.성경적인 고백

 

7.고대 교회에는 의무적인 고백이 없었다.

 

8.크리소스톰은 사람들에게 고백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9.하나님 앞에서 고백함

 

10.사람들앞에서 죄를 고백함

 

11.온 회중이 죄를 고백함

 

12.영혼의 치료와 사적(私的) 고백

 

13.원망을 제거하기 위한 사적 고백

 

14.열쇠의 권한: 그 성격과 가치

 

15.고백에대한 천주교 교리의 요점

 

16.모든 죄를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7.완전한 고백을 요구하는 것은 무한한 고통을 준다

 

18.완전한 고백을 요구하는 데서 오는 악영향

 

19.비밀 고백을 비평함

 

20.열쇠의 권한에 호소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21.사제가 매고 푸는 것은 불확실하다.

 

22.열쇠의 권한을 그릇되게 쓰는 것과 바르게 쓰는 것과의 차이

 

23.그릇된 주장을 폭로함

 

24.요약

 

25.천주교의 교리를 개관하며 논박함

 

26.그리스도는 완전한 보속을 주장하셨다

 

27.로마 교회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탈취하며, 양심의 확신을 일소한다.

 

28.소죄(小罪)와 대죄(大罪)

 

29.죄가 용서되면 벌도 면죄된다

 

30.그리스도의 특별 희생만이 벌과 죄책을 제거할 수 있다.

 

31.그릇된 해서을 폭로함:하나님의 심판에는 처벌적인 것과 교정적인 것이 있다

 

 

32.하나님의 보복의 심판과 징계의 심판은 목적이 전연다르다

 

33.보복의 심판은 벌하기 위한 것이며 징계의 심판은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34.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신자는 낙망하지 말라

 

35.다윗이 받은 벌

 

36.벌에 대한 배상으로서의 선행

 

37.죄인이었던 여인

 

38.로마교회의 교리는 교부들의 권위를 근거로 삼을 수 있다.

 

39.스콜라학자들은 교부들의 교훈을 부패시킨다.

 

 

제5장 보속설에 첨가된 면죄부와 연옥

 

1.로마교회의 면죄부와 그 해독

 

2.면죄부는 성경에 배치된다

 

3.권위자들은 면죄부와 순교자들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4.반대자들의 성경 해석을 반박함

 

5.면죄부는 그리스도 은혜의 통일성과 포괄적 활동을 방해한다

 

6.연옥설은은 논박할 필요가 있다

 

7.복음서에 연옥을 증명하는 말씀이 있을까?

 

8.빌립보서와 계시록과 마카비 후서에서

 

9.고린도전서 3장에 있는 결정적인 구절

 

10.초대교회에 호소하는 것도 로마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 6장

그리스도인의 생활

첫째로 성경은 어떤 논거로 우리에게 이 생활을 역설 하는가

 

1.이 논설의 골자

하나님의 율법에는 우리 안에서 그 분의 형상을 회복 시킬 수 있는 새로움이 내포되어 있다.

 

2.그리스도인 생활의 동기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이 있다.

첫째는 우리의 본성으로는 모든 면에서 의에 대한 사랑이 조금도 없지만 그것이 우리 마음 에 주입되고 확립 될 수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의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된 우리가 방황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한 규칙을 정하라는 것이다

 

3.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가장 강렬한 동기를 그리스도 자신과 그의 구속 행위에서 얻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세우셨고 우리는 그 모범을 우리의 생활에서 표현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주께서 우리를 양자로 삼으실 때의 조건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4.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혀의 문제가 아니고 가장 깊은 마음의 문제이다.

복음은 혀이 교리가 아니고 생명의 교리이다. 복음은 이해와 기억력만이 아니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면서 그곳에서 안식할 때 받아들여 진다.

 

5.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불완전과 노력

그리스도인은 불완전하다. 그러나 목표를 삼고 나아가야 한다.

거룩함과 의로움을 키우기 위해 마음의 깊은 감명을 진심으로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제 7장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핵심: 자기 부정

 

1.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엑 속하였다.

신자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롬 12:1). 가장 중요한 일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명상하고 행동하기 위하여 성별되고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이성은 성령에게 양보하며 항복하며 복종해야 한다.

 

2.,하나님께 헌신함으로써 자기를 부정함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을 구하지말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데 봉사할 수 있는 것을 구해야 한다.

사람의영혼 속에는 악의 세계가 감추어져 있다.

이 세상에서 이미 상을 받지 말라!

 

3.디도서 2장에 나타난 자기 부정

불경건과 세상 욕심이 늘 우리를 방해한다.]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이 필요하다.

근신은 일시적 세상의 재물을 순결하고 검소하게 사용하는 것이며 빈곤을 참는 것과 정절과 절제를 포함한다.

의로움은 모든 사람에게 줄 것을 주며, 정당함의 모든 의무를 포함한다(롬 13:7). 다음으로 경건은 우리가 세상의 불법에서 분리될 때 우리를 하나님과 결합시켜 진정 거룩하게 만든다.

 

4.자기 부정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르게 한다.

자기 부정은 하나님과도 관계되고 사람과도 관계된다.

우리는 감정을 비우므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고(빌 2:3), 진정한 믿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롬 12:10)하여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허물을 돌아보며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5.자기 부정은 이웃을 돕는 태도를 바르게 한다

성경은 인보 전진해서 우리의 은사를 인체의 각 기관들의 능력에 비교한다(고전 12:12).

어느 기관도 자신을 위해서 그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며 자신의 사적인 필요만을 위해서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각 기관은 다른 기관들을 위해서 그 능력을 쏟아붓는다.

온 인체에 공동으로 이롭게 되기 전에는 각 기관은 자체 능력으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와 같이 경건한 사람은 어던 능력을 가졌든 간에 현재들을 위해서ㅜ일할 줄 알아야 하며 교회를 공동으로 세우는 일에 마음을 모아야 한다.

 

6.이웃에 대한 사랑은 사람의 종류에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 만을 우러러 본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을 막기 위해서(갈 6:9) 우리는 바울이 언급한 다른 생각을 첨가해야 한다. 주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선을 행하라고 하신다(히 13:16). 우리는 인간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도록 주의해야 한다(갈 6:10).

 

7.보이는 사랑만으로는 부족하고 중요한 것은 의향(intention)이다.

이런 자기 부정은 우리가 사랑의 의무를 성취할 때에만 일어난다.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행한 사람만이 그것을 성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명랑한 얼굴이나 다정한 말로 유쾌하게 의무를 다하는 것뿐 아니라 그 이사으이것이 요구된다. 남의 불행을 자기의 불행처럼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8.하나님께 대한 자기 부정은 그의 뜻에 대한 헌신이다.

우리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 이외에 어더한 다른 방법으로도 번영하겠다는 욕망이나 소망의 생각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 주시는 축복 만을 의지하고 바라며 안식을 얻어야 한다.

 

9.하나님이 주시는 복 만을 의지하라

일이 잘되고 번창하려면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의지해야만 한다. 우ㅡ리의 바람과 소망대로 되지 않드라도 성급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도우시고 사랑하신다.

 

 

10.자기 부정은 역경을 견디는 힘을 준다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다스리도록 의탁한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나드라도 자기를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고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이다.

 

 

 

제 8장

십자가를 지는 것 자기부정의 일부

 

1.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우리의 십자가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로 자기 십자가를 각각 져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계시는 동안 끊임없이 시험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하시는 것을 필요로 했다(히 5:8).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복종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분을 따라야만 한다.

 

 

2.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완전히 믿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교만을 저지하시는 방법은 우리가 경험을 통하여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만드는 방법이다.

 

 

3.십자가는 하나님의 신실을 경험하는 기회와 미래에 대한 소망을 준다

이것은 우리에게 인내와 복종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하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 5:3-4절).

앞으로 약속하신 것을 영원히 지키실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가를 알 수 있다.

 

4.십자가는 우리의 인내와 순종을 훈련시킨다

주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고난을 주시는 데는 다른 목적도 있다. 즉 그들의 인내를 시험하시고 순종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순종의 습관을 길러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거나 배반해서는 안된다.

 

5.십자가는 약이다

우리의 육적 충동은 조금만 그대로 두면 하나님의 멍에를 벗어나 방종에 빠지게 된다.

십자가는 우리를 영적 육적 질병에서 치료하는 약이 된다.

 

6.십자가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징벌이다

세상과 함께 죄정함을 받게 하지 않으려고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징계하신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그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으니라(잠 3:11-12)고 하였다. 그러므로 징계가 없으면 우리는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고 하신 것은 옳은 말씀이다(히 12:8).

 

 

7.의를 위하여 고통을 받음

의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독특한 위로가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군인에게 이 특별한 휘장을 부여하심으로써 우리에게 큰 영예를 주신다.

 

8.십자가 밑에서 고통당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안에서 위로를 받는다

의를 지키기 위해 치욕이나 재난을 당하는 것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충분한 위로를 준다(벧전 4:12절 이하, 딤전 4:10, 고후 6:8).

 

9.스토아 사상가와 달라서 그리스도인은 고통과 슬픔을 밖으로 나타낸다

옛날 스토아학파의 사람들은 히노애락에 대해 우매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통과 슬픔을 나타낸다. 예수님도 그러하지 않으셨던가(요 16:20, 마 5:4, 마 26:38).

 

10.현실의 슬픔과 현실의 인내는 서로 충돌한다

성경은 가혹한 불행으로 고통을 당해도 실망하거나 쓰러지지 않으며 비통함으로 찔림을 당해도 영적 기쁨이 넘치며 불안에 눌려도하나님이 주시는 위안으로 기운을 회복하는 성도의 인내를 칭찬한다.

 

11.인내에 대한 철학적인 견해와 기독교적인 견해

빈곤이나 추방이나 감옥에 갇힘이나 모욕이나 질병이나 사별이나 그와 비슷한 어떤 일이 우리를 괴롭히더라도 우리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믿고 인내해야 한다.

하나님의 질서 정연한 정의 가운데서 우리의 고난은 유익을 위함이다.

 

 

 

제9장

내세에 대한 명상(Meditatio Futuravitae)

 

 

1.허무한 현세 생활

현세는 허망하다.

죽음 이후의 영생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야수보다 나을 것이 없다.

부와 권세와 명예라는 것은 허망하다. 탐욕,야심,정욕 등은 더 먼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허망한 것들이다.

 

 

2.우리는 현세 생활의 허무성을 보지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현세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많다.

즐겁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들로 가득차다. 이런 꼬임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주의를 환기해야 한다. 인생은 연기(시 102:3)나 그림자(시 102:11)와 같은 것이다.

 

3.지상 생활을 감사함

신자는 현세의 생활을 무시하는 습관을 갖더라도 그것을 증오하거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생활을 해서는 안된다. 지상생활도 하나님이 주신 복 중의 하나이다.

현세 생활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현세의 생활은 하늘나라의 영광을 준비하고 곳이어야 한다.

 

4.영생에 대한 올바른 동경

현세에 대한 잘못된 애정을 없애버린 만큼 더 좋은 생활에 대한 욕구는 증가되어야 한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제일 좋고 될 수있는대로 속히 죽는 것이 다음으로 좋다(전 4:2-3)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판단이 건전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신자의 목표는 인생은 원래 비참한 것일 뿐임을 깨닫는 동안, 더욱 큰 열성으로 속히 내세의 영생을 명상하는데 전심을 기울여야 한다.

내세의 삶에 비하면 현재의 삶은 무시해도 무방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경멸하고 혐오해야 한다.

 

5.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배격함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 속에 어떤 죽음도 극복할 수 있는 경건의 광명이 있어야 한다.

미래의 영생을 중시할 때에 우리는 지상에는 결코 없는 견고한 상태를 얻을 것을 확신해야 한다.

 

6.내세에 대한 열망은 신자에게 위로를 마련해준다

신자들은 누구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해서는 지상에 거하는 동안에는 모두 “도살할 양”같이(롬 8:36)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만일 하늘에 전념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극복하며 그 현존 상태를 초월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심한 절망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주께서는 우리들의 눈에 눈물을 씻어주실 것이요(계7:17) 영광과 환희의 옷을 입혀 주실 것이다(집회서 6:31).

 

 

 

제 10장

현세 생활과 그 보조수단들을 사용하는 방법

 

1.두 가지 위험:잘못된 엄격한 금욕과 잘못된 방종

현재 생활의 좋은 것들은 하나님의 선물로 여겨 즐겨야 한다. 다만 표준이 있다. 현세의 생활이란 주의 백성들이 하늘나라에 가려고 서두르고 있는 나그네의 생활이다(레 25:23, 대상 29:15, 시 39:13, 19:19, 히 11:8-10, 13-16, 13:14, 벧전 2:11).

 

 

2.대원칙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여러 가지 선물들을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우리의 멸망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창조하시고 정하신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3.선물을 주신 이를 우러러보면 옹졸한 생각과 방종을 막을 수 있다.

필요한 것만 사용한다는 옹졸한 비인간적인 철학을 의지하지 말자. 그러나 우리는 육의 정욕을 막는데도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즉 하나님의 선물을 남용하지는 말자.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롬 13:14).

 

 

4.영생을 갈망하는 것도 우리의 외면적 생활을 바르게 결정한다

하늘의 영생을 명상하는 것은 확실하고 올바른 길이다. 여기에 두가지 법칙이 있다.

첫째 바울이 명한바와 같이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며, 아내있는 자들은 아내 없는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자들은 없는 자같이 해야 한다(고전 7:29-31절).

둘째 부유함을 절제하는 것 뿐 아니라 빈곤을 평온하게 참고 견디는 법도 알아야 한다.

 

5.검소와 위탁물(委託物)인 지상 소유에 대하여

궁핍한 사람은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망으로 고통받지 않기 위해 서 없이 지내며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절제의 법칙을 지킨다면 그들은 주님의 학교에서 상당한 진전을 할 것이다.

경건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 사도의 모범을 따라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함과 궁핍함 그 어떤 형편에도 처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빌 4:22).

 

 

6.주의 부르심이 우리의 생활 양식의 기초임

주님은 우리 모두가 어떤 행동에서나 주님의 부르심에 주의할 것을 요청하신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인간의 본성이 끊임없이 타오르고 얼마나 변던 스럽고 여러 가지 것을 한꺼번에 차지하려는 야심이 큰가를 알고 계신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으로 알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는그 일이 빛날 것이며 매우 귀중한 것으로 인정 받을 것이다.

 

 

 

제 4권 교회와 국가는 무엇인가( 요약/ 교육용)

 

제 1장 우리는 경건한 자의 어머니인 교회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1-4= 우리의 어머니인 거룩한 교회)

1. 교회가 필요한 이유

1) 우리가 무지와 게으를 때 외적 도움

2) 복음 전도가 활발하도록

3) 하나님이 쓰시는 입술을 통해 가르치시려고(엡 4:11)(

4) 거룩한 일치와 올바른 질서

5) 성례전의 은혜

 

2. 교회와 교리의 관계

1) 교회가 하나님 같은 신앙의 대상이 아님(로마 카톨릭의 문제점)

2) 로마 카톨릭 교회가 “카톨릭” 혹은 “보편적인” 교회가 아니라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카톨릭 혹은 보편적 교회를 구성.

3) 모든 선택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엡 1:22, 롬 12:5, 고전 10:17)

 

3. 성도간의 교제(교통)

1) 부르심의 한 소망(엡 4:4)

2) 세상 조직은 무너져도 교회는 무너지지 않음

3) 선도는 결코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지 않음

 

4. 성도의 어머니 되시는 가시적 교회

1) 연약한 우리는 일평생 교회에서 나갈 수 없는 교회 학교 생도이다

2) 교회의 품을 떠나서는 어떠한 죄의 용서나 구원도 없다(사 37: 32, 욥 2:32).

3) 교회 교적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면 하나님 백성 명부에도 기록 되지 못함(겔 13:9).

4) 그러므로 교회를 떠나는 것은 비참한 결과를 낳는다!

 

(5-6= 하나님을 대변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

5. 교회를 통한 교육의 가치와 의무

1) 미신과 이단에 빠지는 것 차단(신 18:10-11, 레위 19:31)

2) 백성을 충족 시킬 종을 주심(신 18: 15)

3) 율법 만 주신 게 아니라 해석자를 주심(말 2:7)

4) 하나님은 평범한 입으로 교수 방법을 쓰심= 그러므로 하나님 명령과 선포 되는 구원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함

5) 이를 거부 할 때 치명적 올무에 걸림!

6) 자만감, 거부감, 경쟁심으로 인해 공중 집회를 무시하고 설교를 불필요하게 여기다가 극악한 오유와 타락한 망상에 빠지게 된다!

7) 하나님은 믿음의 풍성을 위해 교회의 교육을 통한 경건의 훈련을 만드셨다.

 

 

6. 성직의 의미와 한계

1) 아비의 마음을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로 돌아오게 만든다(눅 1: 17, 말 4:5-6)

2) 수고한 열매를 거두도록 그리스도께서 보낸 자(요 15:16)

3)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닌 성령의 사역(고전 3:9)

 

7. 불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

1)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것은 모두 교회이다.

2) 현재 지상에 살고 있는 성도 뿐 아니라 천지 창조 이후 선택된 이들 모두가 교회 소속이다.

3) 교회 안에는 위선자들이 섞여있다.

 

8. 우리의 판단의 한계

1) 누가 참 백성인가를 아는 것은 하나님께만 속한 특권이다(딤후 2:19)

2) 주님 만이 구원의 종점에 이르기까지 진정으로 거룩한 열매를 맺을 견인할 자를 알아보신다(마 24:13). 그러나 누가 주님의 참 자녀인가를 우리 스스로 아는 것도 가치가 있는 일이다.

 

9. 교회의 표지와 판단에의 적용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전파되고 성례전이 지켜질 때 거지 교회는 존재한다(엡 2:20, 마 18:20).

 

 

(10-16= 교회의 표지를 가진 교회는 아무리 결함이 있어도 버리면 안 된다)

10. 교회의 표지와 권위

1) 말씀 선포와 성례 준수는 교회의 표지이다.

2) 그 권위를 멸시 하거나 경고와 충고를 무시하거나 징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3) 교회를 버리고 그 일치를 파괴하는 것은 더욱 용납할 수 없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함부로 여겨 교만하게 떠나는 자를 배반자와 배교자로 여기신다. 주님은 교회의 권위를 중히 여기시므로 그것이 침범 당할 때에는 당신의 권위가 저하 된 것으로 믿으신다.

 

11. 표지들의 절대적인 타당성

1) 사단은 교회의 표지(말씀 선포와 성례전)를 비판하고 부정하여 교회를 공개적으로 배반하고 떠나버리게 만든다!

2) 사단은 주님의 교회에서 이 두 가지 표지를 지우기 위해 위험하고 치명적인 유혹을 시험함을 잊지 말라!

3) 교회가 정당한 말씀과 성례전에 안에 있다면 마땅히 드릴 존경을 확신을 가지고 바쳐야 한다!

 

12. 표지의 의미를 잘 알고 유의해야 경솔한 분리를 막을 수 있다

1)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을 순수하게 집행하면 다른 결점이 있더라도 그 공동체를 함부로 거부해서는 안 된다.

2) 심지어 말씀 선포와 성례전 집행에 있어 결함이 생기더라도 그것이 교회와의 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3)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고 그것이 성도 사이의 분열을 일으키는 근거가 되면 안 된다.

4) 사소한 불일치로 교회를 버리지 말라! 오히려 각자 받은 은혜의 분량에 따라 교회의 덕을 세울 책임을 생각하라!

 

13. 교회의 불상사는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1) 마귀는 비정상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신자를 떠나게 만들려고 매복하여 기다리고 있다.

2) 자기는 잘났다는 그릇된 확신으로 하늘의 천사라도 된 듯 인간적 모습이 보이는 사람을 비판하는 자들이 있다.

3) 아무런 오점도 없는 교회를 찾는다는 것은 헛된 노력이다. 교회를 함부로 떠나는 자들은 교회는 거룩하다고 주장한다(엡 5:26). 그들은 자신이 악인의 무리에서 등을 돌린 것이라고 착각한다. 교회는 그물을 끌어올리기까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 않는다(마 13:47-48). 하나님은 교회의 가라지를 뽑지 않고 버려둔다(마 13:14-30).

 

14. 바울과 문제 많은 그의 회중

1) 분열과 분쟁과 시기의 불꽃과 무서운 도덕적 부패와 교리적 모순에 빠진 고린도교회도 하나님의 교회였다(고전 1:2, 11:3, 5:1)

2) 예의와 질서가 없었으며 하나님이 주신 은사 조차 사라잉 아닌 야심을 위해 쓴 고린도 교호(고전 13:5).

3) 오늘날 자신의 교회에 대해 사납게 격노하며 떠나가는 사람들은 복음을 거의 버린 자와 같았던 갈라디아 교회와 교인들을 교회로 인정한 사도 바울을 기억하라(갈 1:2).

 

15. 악한 자들과의 교제 문제

1) 교회에는 악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목사가 그들을 다 제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2) 그런 문제로 시비를 걸어 교회를 떠날 권리가 있다고 여기지 말라.

3) 사도 바울은 남보다 오히려 개인에게 자기 자신이나 잘 살피라고 요구한다(고전 11:28).

 

16. 완전을 내세우는 것은 그릇된 견해에서 나온다.

1) 의에 대한 잘못된 열심과 그에 따른 신경과민 현상은 진정한 열심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자만심과 교만 그리고 거룩에 대한 잘못된 견해로부터 온다. 그럼에도 남을 선동하고 경멸하며 교회를 떠나는 자들은 자기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한 가지 아유가 전부이다.

2) 어거스틴= 교회가 경건한 규율이 유지 되려면 교회는 항상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엡 4:3)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17. 교회가 거룩하다는 의미

1) 아직 거룩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거룩(엡 5:25-27)

2) 거룩과 완전한 순결을 갈망할 때에 아직 완전히 이루지 못한 순결을 인정해 주신다.

 

18. 예언자들의 보기

1) 예루살렘이 소돔과 고모라 같이 변해도 선지자들은 연합을 갈망하며 예언하다(사 1:10)

2) 도덕적으로 부패하여 절도, 강도, 배신, 살육, 기타 악행이 거듭 되어도 하나님은 별도의 새로운 교회를 만드시지 아니하시고 그 가운데 말씀 하신다.

 

19.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보기

1) 바리새인들이 극도의 불경건한 방종 상태에 있었어도 예수님고 제자들은 함께 예배를 드렸다.

2) 교회 안에 가라지나 불결한 그릇들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교회를 떠날 이유가 되지 않는다(키프리안).

 

20. 죄의 용서와 교회

1) 이 세상의 경주에서 자신을 완전한 자라고 믿는 공상은 마귀적이다.

2) 주님은 성도의 교통 안에서만 자비를 베푸신다고 말씀 하셨으므로 교회 공동체가 베푸는 세례 가운데 우리의 추함을 용서 받고 씻게 된다.

 

21. 교회 성도들을 위한 영속하는 용서

1) 주님은 교회 안에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양자를 삼으시고 보존하시고 지키신다.

2) 우리는 교회라는 몸에서 용납되고 접붙임 받게 된다.

 

22. 열쇠의 권위

1) 인간은 연약하므로 하나님은 직책을 맡은 목사들을 통해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용서를 체험케 하고 위로 받게 한다.

2) 다음 세 가지를 유의할 것

첫째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무리 뛰어나게 거룩하다 할지라도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몸을 입고 사는 한은 여전히 죄의 용서를 필요로 한다.

둘째 이 은혜는 교회에 속하였으므로 교회와의 교통 가운데 살지 않고서는 그것을 받을 수없다.

셋째 이 은혜는 교회이 사역자들과 목사들을 통해서 복음 선포 혹은 성례전 집행을 통해 우리에게 집행된다.

 

23. 모든 성도는 자기 죄가 용서되기를 구해야 된다(반대자들: 재세례파, 노바티아누스파).

1) 세례 받은 후 떨어져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냉혹한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2) 세례 받은 후 천사같이 되는 것이 아님을 늘 기억하고 늘 죄 용서를 구하라(마 6:12).

 

24. 옛 언약 아래에서 죄 많은 신자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율법

1) 초창기 교회의 모습인 언약 안에서 용서 받은 야곱의 아들들(창 37:28, 창 34:25, 창 38:16)

2) 중생한 다윗의 죄와 용서(삼하 11:4, 15; 삼하 12:13)

3)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킨 백성들을 용서하심(신 30:3-4)

 

25. 옛 언약 아래에서 죄 많은 신자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예언서

1) 돌아온 아내를 본부는 용서하지 않으나 하나님은 돌아오라 말씀(렘 3:1-12)

2) 죄의 질명을 고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왕상 8: 46-50, 민 28: 3 이하)

 

26. 새 언약의 은혜

1) 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완전하게 나타나셨고 풍부한 자비를 부어주셨다(딛 1:9, 3:4, 딤후 1:9)

2)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화해가 성취 되었다(고후 5:18 이하)

3) 베드로는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은 천사들 앞에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슴을 듣고(마 10:33, 막 8:38) 하룻밤 사이에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부인(마 26:74)하고 용서 받음(눅 22:32, 요 21:15 이하).

 

27. 타락한 교회를 향한 은혜

1) 가볍지 않았던 갈라디아 교회의 죄(갈 3:1, 4:9)

2) 갈라디아 교회 보다도 더 가증스러운 고린도 교회도 회개에로 초청받음(고후 12:21)

3) 죄악을 엄히 다스리시되 인자함을 남겨 두시는 하나님(시 89:30-33)

 

28. 오직 무의식적 죄만 용서 받는가

1) 모르고 지은 죄만 용서 받고 사람이 알면서도 지은 고의 적인 죄는 용서 받지 못하는가? 그렇지 않다!

2) 모르고 지은 죄(레위기 4장)와 고의적인 죄(레위기 6:1 이하)에 대한 대속 재물이 따로 있다.

3) 다윗도 분명 고의적인 죄를 지었고 용서 받았다(삼하 11장)

4) 정욕과 불결과 음행과 미움과 분쟁이 넘쳐 났던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결코 그것을 옳다고 배우지 않았다(고전 5장).

5) 배드로도 자기의 선생을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를 결코 모르지 않았다(마 26: 74).

6) 회개하면 고린도 교인이든 베드로든 다윗이든 모두 용서 받는다.

 

29. 두 번째 회개의 문제

1) 신자의 매일 받는 용서는 가벼운 죄만 용서 받음을 말하는 게 아니다.

2) 교회의 징계 받은 자도 용서 받을 수 있으므로 지나친 징계를 조심하자(고후 2:7).

조덕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