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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신앙의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

기독교 세계관 2(신앙과 과학 3강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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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자료<필기 자료>

* 이 내용은 제 육성 강의를 수강생이 직접 필기한 것을 일부만 다듬어 여러분들에게 원문 그대로 제공하는 원고이니 참고하세요. 강의를 필기했으므로 일부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 감안하여 읽으시고 궁금한 부분이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자료 아래 토의 및 질의 3문항이 있습니다. 이 클래스의 질의 응답 코너 등에 과제로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여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덕영 교수-

 

 

평택대는 복음주의 신학교다. 복음주의는 하나님이 그리시는 그림을 우리가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이 복음주의 안에는 다양한 색깔이 있다. 이 색깔은 교파로 나타날 수 있다. 복음주의 안에 들어와 있으면 서로 싸워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외곽선에 걸쳐 있는 것도 있다. 이것은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이런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창조과학 운동은 근본주의 운동화 되어 있다. 너무 폭을 좁게 하고 남을 정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말씀대로 풍성함을 누려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맛보기만 한다.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맛보기를 보여주실까? 풍성함이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와 가정을 통해 맛보게 하신다. 이 풍성함이 바로 사랑이다. 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이다.

 

[세계관]

이 과목은 신앙과 과학이다. 세계관을 잘 알아야 한다. 이제 많은 학교에서 세계관이 과목화되었다. 이는 신앙과 과학에 있어서도 무척 중요하다. 세계관을 먼저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 세계관은 Welt Anshauung(칸트, World View)다. 천재는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드는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은 간단한 공식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교수들은 쉬운 것을 어렵게 만든다.(ㅎㅎ) 세계관을 쉽게 표현한 천재가 누구일까? 바로 독일의 임마누엘 칸트다. 그는 대단한 천재다. 그는 사람들이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관점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내 홈페이지를 자주 애용하기 바란다. 1970년대의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만주 군관학교 출신이라 일정 시대의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젊은이의 장발을 싫어했다. 젊은이의 세계관과 박정희 대통령의 세계관이 달랐다. 그래서 장발을 단속했다. 하루는 내 친구가 시무룩하게 왔다. 장발 단속을 당했단다. 내가 강의를 하다 보니 1990년대 초에 대학에 모자를 쓰는 풍습이 생겼다. 1970년대에 모자를 쓰고 오면 교수님에게 찍혔다. 그런데 1990년대에 모자를 쓰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대충 70-80%는 모자를 쓰고 다녔을 것이다. 이처럼 세상은 변한다. 일본은 1910년부터 우리나라를 지배했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지배하기 위하여 단발령을 내렸다. 단발령을 내리니 온 나라가 반발하고 심지어는 자결하는 분들도 있었다.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라는 것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은 생김새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처럼 생각은 달랐다. 동일한 것을 놓고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20년 전에 서울대에 장승을 세웠다.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개막식에 보니 누군가가 싹둑 베어 버렸다. 범인은 서울대 다니는 기독교인이었고 CCC맨이었다. 황당한 일이다. 단군상을 부수고 구속되었던 목사님도 있었다. 영주의 큰 교회의 목사님이셨는데 기물 파손 죄로 당당하게 유치장을 다녀오셨다. 덩치도 크신 분이고 혈기도 왕성한 분이셨다. 이런 예로 볼 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세계관의 특징]

1. 세계관은 학문이 아니다.

2. 전(前) 학문적이고 이론이 아니다.

3. 변한다. 세계관이 바뀐다는 실마리로 선교에 연결할 수 있다.

4. 가치관과 관련되어 있다. 머리를 깎는 것은 목숨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가치다.

5. 삶과 죽음과 전통, 도덕, 윤리가 담겨져 있다.

6. 종교성이 있다. 같은 서울대 학생 중에도 장승이 서서 멋있다 하는 학생도 있고 베어버리는 학생도 있다. 불교에서 기도 세레머니(축구에서 골을 넣은 후 하는 골 세레머니)를 하지 말라고 해서 물의가 일어나고 있다. 탈북한 사람들이 한국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다. 왜? 여자들이 바지를 입고 다니기 때문이다. 평양의 여자들은 바지를 못 입고 전부 치마를 입고 다닌다. 이것은 김정일의 지시다. 같은 민족임에도 북한과 우리는 서로 다르다. 세계관은 학문이 아니더라도 선교에 무척 중요하다.

 

[기독교 세계관의 등장]

세계관 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이 나타난다. 1980년대에 우리나라 기독교에 세계관이라는 말 자체도 없었다. 기독 지성인들이 나타나서 IVF에서 IVP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젊은이들이 눈을 뜨게 되었다. 1960년대에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러 W. Wentworth라는 사람이 한국에 왔다.

 

그를 통해 한국의 기독 지성인들은 두 부류로 성장하게 되었다. 인문사회학도와 KAIST로 분류된다. 홍릉에 KAIST가 있었는데 이들이 눈을 뜨게 되었다. 인문사회에서는 총신대를 중심으로 신국원, 김현수, 홍영철, 이승구(이상 총신대), 양성만(이상 고대) 등이다. 선교는 단지 예수 믿으시오가 아니라 종합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카이스트에서는 양승훈, 원동연, 이건창, 권진혁, 김경천, 현창기, 배신규, 제양규 등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중요시 여긴다. 창조신학연구소를 내가 만들었다. 인문사회는 기학연으로 바뀌게 되고 카이스트는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로 바뀐 후 기독학술교역동역회로 바뀌었다. 이들이 세계관에 눈 뜬 사람들이다. 한국은 분열이 앞선 나라다. 합치자고 하면 하나가 아니라 셋이 된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로 두 단체의 통합이 2009년 이루어졌다.

 

내 홈페이지에 보면 Banner중에 ()기독교세계관학술동아리가 있다. 위에 열거한 사람들은 기독교 세계관을 연구하면서도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사람들이다. 통합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기독지성인들의 모임이다. 청계천 복계공사를 하러 왔던 토목공학을 전공한 IVF 출신의 외국 젊은이가 이런 대단한 일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는 너무 바삐 살다 보니 독신으로 늙었다. 그는 필요한 책을 잘 안다. 자연과학을 전공한 이들은 CUP라는 출판사를 만들었다. 이제는 둘을 합친 곳의 출판을 하고 있다.

 

[가치]

칸트는 세계관을 언급했다. 그럼 기독교 세계관은 무엇일까? 그럼 누가 처음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말했을까? 칼빈일까? 칼빈은 세계관을 안경이라고 표현했다. Abraham Kugper이다. 이 사람은 네덜란드 사람이다. 화란 자유대의 설립자요, 신학자요, 역사가요, 출판사 사장이요, 국무총리까지 역임한 분이다. 한국에서 화란 자유대를 졸업한 분이 기독교윤리의 손봉호 장로다. 이 분이 ()기독교세계관학술동아리의 초대 이사장이 되었다. 이건창 교수는 좋은 세계관을 저술했다. 그는 자기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다. 세계관 안에는 가치가 있다. 무엇이 가치 있을까? 가치론은 무척 중요하다. 니젤 Lee라는 철학자가 있다. 그는 철학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시고 최초의 철학자는 아담이라고 한다. 남아공의 변호사요, 철학자, 목사인 니젤 리는 좋은 철학이 있다는 것이다. 좋은 세계관은 좋은 가치를 말한다. 왜 공부를 할까?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왜 결혼하나? 좋은 가치를 위해서다. 이와 같이 가치가 관련이 된다. 지금 이 과목은 철학과목이 아니다.

 

첫째, 가치는 진(眞)이다.

가치는 참되어야 한다. 참된 것은 진리다. 시험에서 꼴찌를 뽑지 않는다. 참된 것을 골라낼 줄 알아야 한다.

 

둘째, 가치는 선(善)이다.

가치는 착해야 한다. 이름을 악()으로 짓는 경우는 없다. 악한 깡패도 자기 자녀 이름은 그렇게 짓지 않는다. 김정일은 일천만 명이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자다. 그는 무신론자요, 유물론자다. 하지만 자기 자식은 굶어 죽지 않게 한다. 그는 자기 자식에게 많은 돈을 물려주려고 하고, 권력을 물려주려고 하고, 많은 돈을 들여 교육도 시켰다.

 

강변교회의 김명혁 목사를 아는가? 이 분은 훌륭한 분이신데 지금은 은퇴하셨다. 은퇴 후 자신이 깨달은 것이 있다.

 

하나, 참된 기독교는 ‘약함’이라고 한다.

약함이 은혜다.” 아버지가 순교 당하고 아들이 먼저 하늘나라 갔는데 약함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며칠 전 우리나라의 최고의 천재라고 하는 이어령 교수는 말한다. 그는 약함이 가치 있다고 한다. 딸의 이혼도, 손자의 죽음도 천재답게 받아들인다. 약함의 은혜다.

 

둘, 참된 기독교는 외부 지향적이다.

나와 내 교회와 우리 가정을 뛰어 넘는 외부 지향적 사고가 있다.

 

셋, 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손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이상이 김명혁 목사님이 깨달은 것이다.

 

다시 가치에 있어

셋째, 가치는 미(美)다.

가치는 아름답다 이것은 외모적 아름다움이다. 일반철학에서는 외모적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에는 그런 아름다움을 말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움을 향한 가치다.

 

가치는 여기에 무엇인가를 더해야 한다.

 

넷째, 가치는 지속성이다.

영생의 가치다. 거지 나사로는 불쌍한 사람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최고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영접을 받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에서 지속적인 가치를 가져야 한다. 짝사랑은 가치 있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30년 짝사랑은? 가치 있다. 첫사랑과 20년만의 결혼? 가치 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독생자를 주신 가치가 영생이다. 지속성의 가치다. 3:16을 말씀하시기 전에 요1:12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말씀하신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창조된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창조된 분이 아니다. 시간을 벗어난 분이시다. 그러므로 영생을 가지신 분이시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하나님이 로고스 즉 말씀이시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씀하신다.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으나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1:12 말씀이다. 가치론적으로 보아도 기독교는 좋은 가치다. 직업에서도 좋은 가치를 가져야 한다.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있어야 한다. 목사도 좋은 직업이다. 왜 변호사가 되려고 할까? 나이가 90이 넘어도 할 수 있다. 지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보람된 직업이다. 문창모 장로도 거의 100세까지 의사 일을 하셨다. 회계사도, 감정평가사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M. Div는 귀한 것이다. 나레이터 모델을 보자. 아주 탁월해도 35세를 벗어날 수 없다. 가치 있는 직업을 만들려면 나레이터 모델 학원까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즘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이유는? 50후반까지 할 수 있다. 이는 지속성이다. 좋은 가치다.

 

선교에 있어서 우리의 세계관이 가치 있는가를 분별해야 한다. 먼저 기독교 세계관을 알아야 한다. 아브라함 파이퍼가 미국에서 부흥회를 열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세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도 구원 중심에서 사회의 봉사로 가겠다고 말한다. 아브라함 파이퍼가 역설한 기독교 세계관을 보자. 칼빈은 안경이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다른 안경을 쓴다.

 

[그리스도인의 세계관]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의 안경’을 쓴다.

우연주의자들, 무신론주의자들, 진화론자들은 창조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창조를 믿는다. 라틴어로는 ‘Creatio’라고 하고 영어로는 ‘Creation’이며 히브리어로는 바라. 이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나온 것이다 무()로부터의 창조다. 창세기 1:1에서 하나님인 엘로힘은 태초에 바라를 하신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 세 가지를 만드셨다. 이 세상에서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세상은 이루어질 수 없다. 창세기 1장에는 ‘Who’가 등장한다. ‘누가창조했느냐다. 이 세상에는 창조주가 나온 책이 성경 이외에는 없다. 내 홈페이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내 홈페이지를 활용해서 설교를 해도 좋다. 물질이 어디서 왔나? 우연인가? 그들의 주장에는 답이 없다. 우리에게는 답이 있다. 창조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만 창조를 말하는가? 아니다. 이단들도 창조를 말한다. 만민교회도 창조과학회가 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창조과학을 해서 안 되고 창조론이나 신학으로 나가야 한다. 대신대학 총장은 말한다. “신학이 뒷받침하지 않고 창조과학으로 갈 수 없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타락의 안경’을 쓴다.

영어로는 ‘The Fall’이며 타락(墮落)이다. 이 말은 떨어졌다는 의미다. 한자를 잘 알아야 한다. 이제 죽음도 생겨났고 에덴동산도 생겨났고 부부싸움도 일어났다. 서로 네 탓이요라고 말하게 된다. 아담과 하와 이래로 남 탓을 하기 좋아한다. 이혼도, 교회 분열도 네 탓이다. 타락은 하나님과의 분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다. 그러나 타락한 이후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거룩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 하나님이 이 세상의 창조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흡족해 하시고 만족해하시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은 십자가만을 받으신 것이다. 이 복잡한 것을 조용기 목사님은 십자가에 담은 것이다. 그러나 왜 이 시대에는 이것이 안 될까? 포스트 모던시대이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시대를 알아야 한다. 이전의 모더니즘의 시대에는 가능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십자가 외에는 없다. 마틴 루터도 이것을 깨닫고 십자가 신앙을 외쳤다. 루터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것을 깨닫는다. 건성으로 알면 안 된다. 인터넷만을 보지 마라. 원문을 보기 바란다. 예를 들면 다미엔 신부가 있다. 그는 모로카이 섬에 선교를 하러 간다. 선교가 잘 안 되니 나도 문둥병자가 되어 선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가 여러 번 들어 들었던 설교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들이 직접 책을 읽어 보기 바란다. 사실 다미엔 신부는 성자가 아니다. 성격이 괴팍하고 우울증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의 약함을 통해 변화되었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단순한 지식에 멈춰서는 안 된다. 젖을 먹는 단계에서 이제는 단단한 것을 먹어야 한다. 교인들이 젖만 먹지 말고 성숙한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점점 더 올라가야 한다. 20-30년 동안 신앙생활 해도 변화가 없다. 같은 청년이라 하더라도 해병대 간 사람과 방위 간 사람이 제대 후에는 달라진다. 이것을 역할 성격이라고 한다. 이것은 중요한 것이다. 수학을 곱셈만 열심히 해 보았자 실력이 늘지 않는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성도들이 비슷한 설교를 20-30년 들으면 치매 걸린다. 목사들도 치매가 온다. 목회할 때는 절대 치매가 오지 않는다. 바둑에도 두 가지 맥이 있다. 속맥과 정맥이 있다. 공원에서 하루 종일 바둑을 두는 할아버지는 일 년에 10,000번 바둑을 둔다고 한다. 그래도 5-6급이다. 정맥을 배우면 2-3개월 만에 일 년에 10,000번 바둑 두는 사람들보다 낫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이다. 지정의(知情意)가 다 변화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종합화되어야 한다. 오순절신학에서는 정()에 치우쳤는데 이제는 변화되어야 한다. 정맥을 배우면 그것이 속맥으로 가지 않는다. 지정의(知情意)가 한꺼번에 종합적으로 올라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구속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피조물도 신음하게 되었다. 타락이 있으므로 구속(救贖)이 필요하다. 구속은 ‘Redemption’이다. 구속이 무엇인가? 베드로는 무식하고 바울은 준비된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두 사람을 다 쓰셨다. 문제는 두 사람 다 성숙의 단계로 갔다. 성경 66권이 있다. 얌니아 회의와 카르타고 회의에서 고민과 고민을 거듭해 성경이 정경화 되었다.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계시고 섭리다. 마지막까지 의문이 된 책이 베드로 후서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베드로답지 않게 무게감을 가진 책이다. 도저히 베드로가 쓴 책으로 보이지 않는다. 구속이라는 말에는 ‘re’가 들어가 있다. 이 말은 다시. 무엇인가를 다시 주고 사신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골고다를 올라가신 것이다. 온 우주의 저주를 짊어지고 올라가셨다. 무엇하려고? 우리를 다시 사시려고 한 것이다. 성막은 피비린내 나는 곳이다. 결코 거룩한 곳이 아니다. 동물의 각을 뜨고 피를 태우는 곳이다. 이 저주를 우리가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받으셨다. 하나님은 양으로 보여주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창조, 타락, 구속의 안경을 가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십자가가 있다. 양성만 교수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책을 쓰고 기독교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선교는 무엇일까? 우리가 쓰고 있는 안경을 다른 문화권의 사람에게도 씌어 주는 것을 말한다. 신앙과 과학도 이 같은 관점에서 출발한다.

 

* 토의 및 질의

1) 자신의 언어로 세계관을 간략하게 설명해보세요

2) 기독교인으로서 세계관의 중요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3) 세계관은 신앙과 과학에 있어 어떤 틀을 제공하나요?

 

조덕영 교수(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