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자 동맹의 중심 도시로 독일 제 2도시 함부르크의 복음교회(성 니콜라이 교회를 중심으로)와 도심 풍경들
한때 손흥민 선수가 몸담았던 함부르크 SV의 연고지인 함부르크 시내 전경(멀리 복음주의 5대 교회 첨탑이 보인다)
독일 제 2도시 함부르크의 복음교회(성 니콜라이 교회를 중심으로)
복음주의의 어원은 종교 개혁 시대로 올라간다. 복음주의는 독일에서 루터 교인들과 개혁주의자들을 포괄적으로 부르던 개념이었다. 처음 반개혁주의자들은 개혁주의자들을 루터파 교도(Lutheraner) 또는 마틴파 교도(Martianer)라 불렀으나 1521년 루터는 복음주의자(Evangelisch)라고 고쳐 불렀다.
독일 제 2도시로 한자동맹의 도시였던 함부르크의 5대 교회들도 복음주의 교회들이다. 그 높이가 함부르크 시내 건물 중 최고층의 높이(116~147m)를 자랑한다. 함부르크 최고 높이를 지닌 구시가지의 기념 성 니콜라이 교회도 그 중 하나다.
Hopfenmarkt의 Willy-Brand-Straße를 따라 구시 가지의 Rödingsmarkt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함부르크의 Nikolai 기념관이 있다.
1195 년 Adolf III von Schauenburg는 "새로운 성" 폐허에 "새로운 도시"를 설립한지 몇 년 후, 새로 정착 한 시민들은 그들 자신의 교회를 요구하자 아돌프 백작은 당시 표면적 약 12.0 x 26.0m의 작은 예배당을 세우도록 했는데, 약 300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예배당은 성 니콜라스 (Nicholas von Myra)에게 헌정되었다. 그는 무역 선원으로 많은 사람들을 조난에서 구해준 인물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이후 수 세기 동안 교회구조는 양파 껍질처럼 반복해서 확대되었다. 1240년에서 1250년 사이의 첫 번째 확장에서 예배당을 개조하여 합창단으로 사용하였다. 각각 3개의 연결고리가 있는 3개의 본당은 대략 정사각형의 평면도를 이루고 있다. 약 22m 높이의 본당은 통로보다 약간 더 넓고 이것보다 약간 더 높기 때문에 균일하게 아치형의 "홀"이 자연스럽게 훨씬 낮은 전 예배당이 추가되었다.
약 150 년 후인, 1384년에서 1400년 사이 두 번째 증축으로 1500명의 방문객을 수용할 수 있는 동일한 높이의 타원형 예배당을 세운다.
1400년에서 1425년 사이에는 예배당 부착물이 있는 새로운 후진(Apsis)에 의해 오래된 예배당을 개조하여 22개의 제단이 있는 예배당이 추가되었다.
1517년 교회에 탑이 세워지고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번개와 화재 이후에는 다른 탑으로 교체된다.
1593년 두 번 째 탑이 세워진다.
1656/57 128m 높이의 피터 마르 콰트 (Peter Marquardt)의 우뚝 솟은 바로크 양식의 탑이 세워졌다. 모든 타워에는 함부르크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시계가 있었으며 한자 도시의 "표준 시계"로 간주되었다.
구시가지의 기념 성 니콜라이
교회 지하 박물관 및 전시
유리 피라미드는 지하실의 박물관 입구를 나타내고 약 450 평방미터의 면적에 박물관은 변화하는 (도시)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2013년 9월에 개설 된 상설 전시회는 4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제 2 차 세계 대전 동안 함부르크의 파괴와 함께 교회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조덕영(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