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염성 질병 치료를 위한 요양소는 베를린-데사우 철도 북서쪽 두 지역에, 비감염성 질병 치료를 위한 요양소는 철도 남동쪽 두 지역에 설립되었다. 지역은 성별에 따라 구분되었다. 길의 남서쪽에는 여성 요양소와 요양소가 있고 북동쪽에는 남성 요양소와 요양소가 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여성이 고용된 공장 건물은 길의 남서쪽에 있었고 대부분의 남성이 고용된 공장 건물은 시골길의 북동쪽에 있었다.
첫 번째 건설 단계는 건축가 Heino Schmieden(베를린의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와 라이프치히의 콘서트하우스의 건축가)과 Julius Boethke에 의해 1898년부터 1902년까지 진행되었다. 1908년부터 1910년까지의 두 번째 건설 단계에서 침대 수는 600개에서 1200개로 증가했다. 1926년부터 1930년까지 세 번째 건설 단계는 Fritz Schulz가 담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벨리츠 요양소는 아프고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한 군 병원 및 요양소로 사용되었다. 1914년에서 1918년 사이에 벨리츠에 수용된 약 17,500명의 병사들 중에는 아돌프 히틀러 상병(1916년 10월 9일부터 12월 4일까지)과 Karl Neufeld(19세기 수단에서 활동한 독일 상인으로 마흐디주의 세력에 12년 동안 포로로 잡혀 있다가 영국이 마흐디주의 세력을 물리친 후 풀려났다. 그는 이 경험에 대한 자서전을 A Prisoner of the Khaleefa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1899년 옴두르만(Omdurman)에서 12년 동안 감금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전반기 동안 Neufeld는 또한 대영제국에 맞서 아랍인들을 선동하면서 독일 제국의 번역가이자 비밀 요원으로 활동)가 있었다.
1953년부터 1998년까지 폐질환 및 결핵 전문 진료소로 사용되었다. 2014년부터 운동 장애/파킨슨병을 위한 신경 전문 병원을 운영하는 Kliniken Beelitz GmbH의 위치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요양소가 심하게 파손된 후 1945년 소련군이 이곳을 점령했다. 요양소는 1994년까지 소련군대의 해외 최대 군사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간암 투병 중이던 에리히 호네커( Erich Honecker, 1912년 8월 25일 ~ 1994년 5월 29일)는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지도자로서 1971년부터 1989년까지 동독의 국가원수)가 1990년 10월 동독이 해산된 후, 호네커는 통일 독일 정부에 의하여 고발된 냉전 시기에 기소를 피하려고 1990년 12월부터 아내 마고트와 함께 1991년 3월 13일 모스크바로 날아가기 전까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2015년 9월 11일, 이전 여성 폐 요양소 부지에 브란덴부르크 최초의 나무 꼭대기 길이 열렸다.
길이 320m, 높이 23m이며 1945년에 소실된 건물의 나무로 뒤덮인 폐허를 가로질러 "Das Alpenhaus"라고도 불렸다. 접근은 40.5미터 높이의 전망대의 세 번째 플랫폼에서 21.6미터 높이에 있으며, 그 꼭대기 플랫폼은 36미터 높이이다. 경로에 대한 장애물 없는 액세스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타워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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