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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조직신학

다윈의 진화론과 윌버포스·헉슬리 논쟁<조덕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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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진화론과 가톨릭의 진화론 이해

 

다윈의 진화론과 윌버포스와 헉슬리 논쟁

조덕영 교수

 

다윈의 진화론

 

1) 다윈의 비글호 항해(22세 되던 1831년 2월부터 5년 간)

2) 다윈, 1832년 2월 브라질 울창한 숲의 생물체 다양성을 목격하다.

3) 1834년 2월 티엘라 델 푸에고에서 목격한 원시인에게서 인간의 조상이 동물일 것이라는 인상을 받다.

4) 1835년 4월, 안데스를 가로지르는 7천 피트 높이에서 발견한 화석화된 나무숲 목격(격변적 지층)

5) 1835년 9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5주간 체류하며 핀치 새 관찰(핀치 새의 부리와 구조의 점진성과 다양성)

6) 1859년 <종의 기원> 출간: 비글호의 승선에서 얻은 관찰 자료에 근거하여 직설적인 귀납법적 논리로 종의 기원을 서술. 당시 과학에서 새로 등장한 방법론이었던 귀납법 사용.

7) 라마르크(1744-1829)의 용불용설과 드 브리스(1848-1935)의 돌연변이 발견의 사이에 등장한 종의 기원

8) “인간이 자랑하는 느낌과 직관 그리고 사랑, 기억, 집중, 호기심, 모방, 추리 등과 같은 다양한 감정과 능력은 낮은 동물에게서도 발견”(다윈의 생각)

9)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다윈의 생각)

10) “생명은 그 몇 가지 능력과 함께 맨 처음에는 창조주(the Creator)에 의해 소수의 또는 한 개의 형태에 불어넣어졌으며” (만유인력의 법치에 따라 회전하고 있는 이 행성에서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하여 가장 아름답고 가장 경이로운 형태로 끝없이) “진화했으며, 하고 있다는 견해에는 장엄함이 있다”(<종의 기원>)

11) 당시 상황: 

자본주의 선진국으로서의 낙관적인 자신감과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Victoria the Queen, 1819-1901, 재위 1837-1901) 시대의 종교 관용적 분위기가 다윈의 새로운 자연발생설을 용인

12) 영국 국교회의 입장: 

성경적 창조를 부정하는 매우 새롭고 충격적인 것으로 인식되며 영국 사회의 폭발적인 관심 유발. 즉 물활론적 관념론 또는 기계론적 유물론에 기초한 전통적 자연발생론을 한 차원 격상한(?) 진화론의 입장은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기독교의 창조교리와 양립이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독교 사회의 엄청난 반발 유발.

 

 

영국 주간지 <Vanity Fair>에 실린 헉슬리(1871)와 윌버포스(1869)의 캐리커처

윌버포스와 헉슬리 논쟁

 

1)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종교계의 반응 대두 

2) 1860년, 옥스퍼드 영국 협회에서의 토마스 헉슬리(1825-95, 줄리앙 헉슬리, <멋진 신세계>의 올더스 헉슬리 조부)와 윌버포스 주교(1805-73, 노예 폐지 운동으로 유명한 윌리엄 윌버포스의 아들)의 논쟁

3) 주요 내용:

이 논쟁에서 옥스퍼드 주교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는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냐?’는 등의 질문으로 공격했고, 이에 맞서 ‘다윈의 불독’으로 불리는 토머스 헉슬리(Thomas H. Huxley)는 과학의 이름으로 다윈의 이론을 적극 변호. 즉 윌버포스는 진화론에 대해 익살스럽고 비꼬는 말투로 헉슬리에게 “당신이 원숭이의 자손이라고 주장한다면 당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중 어느 쪽을 말하는 건가요?”라 물었고, 이에 대해 헉슬리는 “나는 조상으로 원숭이를 갖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진 않지만, 진실을 흐리게 하기 위해 자기의 위대한 재능과 영향력을 겸손한 탐구자의 명예를 더럽히고 조롱하는데 사용하는 ‘인간’보다는 차라리 ‘비천한 원숭이’의 후예가 되겠습니다.”라고 반박하였다 전해진다. 

4) 다윈의 입장:

정작 윌버포스와 헉슬리의 논쟁을 촉발시킨 <종의 기원> 초판은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고 있지 않지만 이 논쟁은 결국 사람이 유인원으로부터 진화되었는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5) 자연발생설이 부정되다:

이 와중에 다윈의 생존 시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프랑스 과학아카데미가 주최한 자연발생론 실험 대회에서 유명한 백조 목(S형) 시험관 실험을 통해 자연발생론이 오류임을 입증(1859)하다. 파스퇴르는 이 실험을 통해 생명속생설(生命續生說: biogenesis)을 입증하고 상금을 획득했다. 그리고 그는 1861년, 『자연발생설 비판』을 출판하였다. 진화론과 자연발생설은 조금 다른 관점을 지닌 개념이기는 하나, 이 기원 논쟁의 포괄적 결론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계속>

<창조와 진화> 강의안

종교, 과학, 진화론

교재(진화론 창조론 이해, 강건일 저) 관련 부분 요약

조덕영 교수(조직신학, T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