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의 풀(金洙暎 시선 <거대한 뿌리>에서)
김수영의 풀(金洙暎 시선 <거대한 뿌리>에서)
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선, 거대한 뿌리>에서, 민음사 간, 1974
"김수영(1946-1968)의 시적 주제는 자유이다.
그것은 그의 초기 시편에서 부터 그가 죽기 직전에 발표한 시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끈질긴 탐구 대상을 이룬다.
그는 그러나 엘뤼 아르처럼
자유 그것 자체를 그것 자체로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시적, 정치적 이상으로 생각하고,
그것의 실현을 불가능케 하는 여건들에 대해 노래한다.
그의 시가 노래한다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절규한다."
김현(1942-1990, 전 서울대 불문학 교수, 문학평론가)의 "자유와 꿈"에서
김현 교수는 기독교가 융성한 호남 출신으로 장로 아들로 기억하나 교회 속 갈등들을 목격하면서 가톨릭에 귀의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필자의 기억이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다. 한글 1세대 문학평론가로 생전 최고의 문학평론가였다. 젊은 시절 같은 불문학도요 동향의 최고 소설가였던 김승옥 작가와 교류했다고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평론가, 소설가였다. 필자가 김승옥 선생을 만난 것은 성결교신학대학원에서 학생과 목사로서였다. 서울대서 불문학을 전공한 김승옥 작가가 큰 신앙 체험을 한 후, 선교를 위해 노년에 신학에 입문한다. 고개를 숙이고 맨 뒷자리에서 필기구를 손에 쥐고 노트에 열심히 헬라어를 쓰고 외우던 장면이 새삼 떠오른다. 글 : 조덕영(신학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