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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배트맨>, 가까이 편만한 죄악과 멀리 보이는 소망

성경과학창조세계관신학 2022. 3. 8.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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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새 시리즈, <더 배트맨> (2)

평단 전반적 호평에도 대중들 반응은 적어

배트맨 시리즈 본연의 매력과 강점 극대화

악인 응징하고 의인 보호하는 의지 명료화

영화 현실감 구약 의인들 현실인식 모티프

▲배트맨 시리즈의 새 영화, <더 배트맨>.

◈죄의 어두움: 배트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암울한 <더 배트맨>

지난 3월 1일 개봉된 <더 배트맨>은 현재 평단의 평가와 관객들의 반응이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론가들은 새로운 배트맨 3부작의 문을 여는 이 영화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서사의 현실성, 분위기의 어두움, 인간의 부정적 심성에 대한 묘사가 적절하게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평이 중론을 이루고 있다.

이런 평단의 호평에 비해, 대중의 반응은 미적지근한 편이다. 개봉 당일 19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한 것을 제외하면, 영화 개봉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전체적인 흥행성적은 부진한 편이다.

얼마 전 개봉된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위협적인 코로나19 확산세 중에도 누적 관객수 750만 명이라는 대단한 극장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더 배트맨>이 평단의 전반적 호평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흥행세를 보이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대중성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의 어두운 분위기이다. 이 영화는 현재까지 개봉된 배트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작품이다.

세 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 내내 해가 비치는 밝은 풍경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중간중간 빗줄기와 안개가 풍경을 채우고 있다. 대사 중 유쾌한 조크는 찾아볼 수 없고 복수심에 짓눌려 뒤틀린 영웅 브루스 웨인의 굳은 표정, 악의에 사로잡힌 연쇄살인마 리들러의 괴팍한 목소리, 비열한 마피아 두목 코블팟과 팔코네의 욕망에 찌든 표정 등 보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는 인물상만 등장한다.

<더 배트맨>의 부진한 흥행세를 이끄는 두 번째 이유로는 서사의 산만함을 들 수 있다. 일단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의 수가 둘을 넘어 대여섯에 이르기 때문에, 어떤 인물 관계에 집중해야 할지 순간순간 종을 잡기 어려운 장면들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정신적 혼란에 빠진 주인공 브루스 웨인과 확신에 찬 빌런 리들러의 갈등이 서사의 핵심 줄기를 이루지만, 이 둘의 갈등에 깊게 연루된 셀리나 카일, 팔코네, 코블팟 등이 등장해서 관객의 관심을 이리저리 분산시켜 놓는다. 세 시간이라는 러닝타임만 가지고는 이들의 복잡한 관계를 밀도감 있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다수의 평론가들이 분석한 대로 이 작품은 배트맨 시리즈가 가진 본연의 매력과 강점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것만은 틀림이 없다.

무엇보다 죄악의 어두움에 넌더리를 내면서도 매일 밤 다시 범죄 현장에 찾아가 악인들을 응징하고 의인들을 보호하는 배트맨의 투쟁심과 의지를 명료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배트맨 브루스 웨인은 자기희생적인 캐릭터이다. 매일 밤 마주치는 죄악의 참상이 어린 시절 자신의 부모에게 닥친 불행(눈앞에서 강도에게 살해당함)을 계속 기억나게 하는데도, 고담 시의 선량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자처하는 인물이다.

다수의 대중문화 학술연구자들이 분석한 것처럼, 이렇게 자신의 육체와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가운데서도 고담이 악인들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막아내려 분투하는 배트맨의 모습은 악인들 중에 거하는 의인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아브라함, 그리고 소돔 사람들의 악행을 보고 들음으로 의로운 심령이 상한 롯(벧후 2:8)의 기사를 모티프로 삼고 있다.

▲자기희생을 통해 고담의 의인들을 지키는 배트맨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 분).

◈죄의 현실: 구약에서 차용한 죄악된 현실에 대한 인식

이처럼 구약의 모티프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는 배트맨 시리즈의 서사는 밝은 미래를 향한 희망보다는 어두운 현실이 우선적으로 부각된다. 애초 구약의 기록 전반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먼 미래, 언제가 될지 모를 시기에 메시야가 나타나 하나님의 공의를 회복시키리라는 소망이 있지만, 당장의 현실은 이스라엘 내부 우상숭배자들의 불신앙과 악행, 그리고 포악한 이방 강대국의 압제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소망의 불씨는 너무 멀리 있어서 거의 보이지 않고, 바로 옆에는 어두움이 가득하다. <더 배트맨>의 전체적인 배경 표현은 바로 이런 구약적 분위기를 영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어두움 속에는 선량한 이들의 삶과 심령마저 잠식할 만한 짙은 악의와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이런 악의 때문에 의인의 대표격인 배트맨마저 정신적 혼돈과 증오에 찬 복수심에 휘둘린다.

이처럼 악의 세력이 고담이라는 공간 전체에 워낙 충만한 나머지, 리들러나 코블팟, 조커 같은 빌런 한둘을 막아낸다고 도시의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이런 빌런들에 비견되거나 그보다 더한 또 다른 빌런들이 계속해서 도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고 확산되는 악의 세력을 힘겹게 막아내는 고통스러운 영웅의 형상이 배트맨이라는 IP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는 인간의 죄성이 단지 몇몇 인간의 도덕성이나 희생만으로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지 못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반영한다.

구약은 멀리 있는 메시아의 소망을 전해주기는 하지만 당장 죄악이 세상에 관영해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이는 오로지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구약의 예언이 성취될 때에만 본격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신약 시대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한 개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지 못한 경우, 그 사람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의 공의보다 범죄가 삶을 지배하는 환경이 펼쳐진다.

<더 배트맨>의 암울한 도시 고담, 그리고 그 속에서 악의와 증오에 침식된 브루스 웨인의 마음은 이렇듯 복음의 빛이 이르지 못한 인간의 불안한 생활방식과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결국 영화 <더 배트맨>은 아직 온전한 은혜에 이르지 못한 채 삶의 구원을 바라는 구약 의인들의 현실인식과 바람을 모티프 삼아 주요인물과 배경을 설정했고, 그래서 그 어떤 슈퍼히어로 서사보다 현실감이 넘친다.

유독 배트맨 시리즈로부터 현실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영화들이 나오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크 나이트>, <조커>, 그리고 <더 배트맨>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현실감 넘치는 서사와 연출로 호평을 받은 배트맨 시리즈 기반 영화, <조커>.

성경에 의하면 인간들의 공동체에 뿌리내린 죄악은 독특한 형이상학적 실재성을 갖는다. 죄는 인간들의 삶으로부터 나온 상대적인 원리나 관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고선(summum bonum)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보조적으로 존재하는 영적 실상이다.

이 실상은 하나님께는 결코 현실화되지 않는 무(無)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피조물, 특히 자유의지를 가진 피조물에게는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는 실재로서의 위력을 갖고 있다.

<더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을 비롯해 고담 전체를 짓누르는 암울한 분위기과 빌런들의 기괴한 악의를 통해 죄악이 우리 현실에 편만해 있는 실상이라는 사실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이 영화가 관객들로부터 다소간이나마 외면받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자기 내면의 허물과 자신 주변에서 위협을 가하는 악을 직시하기를 꺼린다. 이는 죄악이 자기 삶과 영혼을 위협하고 파괴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고, 그런 파괴적인 힘이 자기 주위에 상존하는 현실을 직시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배트맨>은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일정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우리가 평소 들여다보기 싫어하는 죄성의 음습하고 불길한 느낌을 영상으로나마 간접적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죄악을 멀리하고 진정한 선과 의로움을 바라는 마음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구약성경으로부터 서사 전반을 차용한 덕분에 나오는 효과라고 볼 수 있다.

▲<더 배트맨>은 죄악이 관영한 도시 고담의 현실을 통해 죄성의 실재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박욱주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