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절반의 현실’ 반영한 영화, <킹메이커>
목적보다 절차 앞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공학
선거, ‘이해와 욕망 표출 방안’ 전락한 지 오래
민주주의 이상, 숭고했지만 현실적이진 못해
엄창록 조종, 민주주의 정치 현실 민낯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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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킹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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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의 구조: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과 오늘날의 삼권분립
몽테스키외(Baron de Montesquieu, 1689-1755)는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 탄생한 자유민주주의의 선구자 중 하나로, 세계사나 정치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민주주의 근본 이념을 정교하게 다듬은 공로도 있지만,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구체적 구조와 절차를 제안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백과전서파(백과사전을 편찬하고 보급해서 지식과 계몽사상을 확산시키려 했던 지식인 그룹)의 일원이었던 몽테스키외는 당대 유럽 계몽주의 사상을 주도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당연히 그는 인간의 합리적 사고능력과 그에 따른 인류의 역사적 진보를 무한하게 신뢰했다.
그리하여 그는 궁극적으로 최대한 많은 민중이 정치적 절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체제에 대한 이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몽테스키외는 이상과 현실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 또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엘리트 계층에 속한 인물이었다. 남작 작위와 봉토를 갖고 있었고 부유한 귀족가문 아내를 얻었으며 보르도 지방법원 원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그는 당대의 민중 대다수가 글자조차 깨우치지 못한 무지한 처지에 놓여 있었던 현실을 고려해서, 단순한 직접민주제로는 민주정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의회는 당대의 지식층이자 기득권인 귀족에게, 행정부는 최고권력자인 국왕에게 맡기고, 양측이 협력해 이루어지는 법 집행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시민들에게 맡기자는 삼권분립설을 제안했다.
입법과 행정 기능은 기존의 엘리트 계층에게 맡기고, 대신 양측에 부여된 권력이 특정 계층만을 위해 전횡되지 않도록 견제하는 힘을 일반 국민들에게 위임하자는 것이었다.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설은 프랑스 구체제 내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미국과 프랑스의 민주주의 혁명 이후에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로 이루어진 의회와 행정수반, 그리고 양측의 협의에 의해 임명된 판사들로 이루어진 사법부 사이의 상호감시와 견제라는 방식으로 변형되어 수많은 나라들의 정치현실에 적용되고 있다.
즉 민중의 정치개입을 사법부로만 제한하려 했던 원래 삼권분립설의 의도와 달리, 민주주의 혁명 이후의 삼권분립설은 세 개의 정치기구 모두에 민의를 적극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몽테스키외가 만약 오늘날 삼권분립설이 적용되는 방식을 목격했다면, 동의가 아닌 우려를 표명했을지도 모른다.
몽테스키외는 민중의 양심과 시민의식이 이상적인 수준으로 올라서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력의 세 핵심 기구 모두가 민의에 휘둘리면 삶의 안정과 번영 대신 분쟁과 퇴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우려는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고수하는 여러 국가들의 삶의 현실 속에 실제로 현실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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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유민주주의 3대 권력의 하나인 국회(입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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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의 절차: 정치공학의 주요 수단으로 전락한 선거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몽테스키외 당시의 프랑스에 비해 시민들의 지식수준이나 정치의식이 비교도 할 수 없이 높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는 현대 공교육 시스템과 발전된 미디어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양심과 시민의식의 고양은 생각보다 훨씬 더디다. 자유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지식 측면의 성장은 빠르지만, 의지 측면의 성장은 더디다 못해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 이념과 절차적 원리를 알아도 그에 부합하게 양심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특히 공권력의 감시와 규제가 없는 경우에는 시민의식의 퇴보 정도가 더 심해진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본다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인류가 본원적으로 품고 있는 죄성으로 인해 인간 스스로의 선의지는 분명한 한계를 보이며, 그 한계의 범위는 생각보다 좁다.
다수를 위하는 민주적 윤리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이 서로 충돌할 때 거의 대다수의 민중은 우선 후자를 추구한다. 이로써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은 사라지고, 그 절차만 남아 욕망의 도구로 활용되게 된다.
선거도 이처럼 개인 혹은 집단의 이해와 욕망의 표출 방법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미국조차도 극복하지 못한 현실이다. 계몽주의가 그려낸 민주주의 이상은 숭고했지만 현실적이지 못했다.
다만 일정한 정도의 정치적·사회적 진보를 이루어냈고,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 시민들은 그저 그 정도의 발전과 진보에 만족하고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영화 <킹메이커>는 이런 점에서 반쯤은 현실적이고, 반쯤은 비현실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전략가 엄창록이 국회의원 및 대통령 선거를 정치공학적으로 조종하는 장면들은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준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적 정치인으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엄창록에게 도덕적으로 흠없는 선거운동 진행을 요구하고 그와 격하게 대립하는 장면은 감독의 이상이 가미된 허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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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메이커>에 등장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김운범, 설경구 분)과 엄창록(서창대, 이선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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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에서 엄창록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별하게 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1971년 대선 선거운동 기간 중 중앙정보부가 엄창록을 납치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위해 강제로 일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가장 유력한 이유로 제기되고 있다.
엄창록이 정말로 납치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가 중정 요원들의 방문을 받은 뒤 몇 달간 사라졌었고 이것이 엄창록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더 이상 함께 일하지 않게 된 원인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선거 전략의 도덕성을 두고 김대중 후보와 참모인 엄창록이 격하게 대립한 일은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당시 김대중 후보가 개인의 영달과 권력의 전횡만을 추구하는 부패한 정치인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만일 그랬다면 그가 이후의 한국 정치사에 그만한 공로와 업적을 남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인으로서 김대중 후보가 완벽한 성인군자인 것도 아니었다. 엄창록의 선거전략이 다소간 편법적이라도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당시 김대중 후보가 자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치참모를 지탄하고 내칠 정도로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 그 정도로 완벽한 도덕성을 갖춘 인물은 정치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기 어렵다. 많은 이해 충돌을 완화해 가며 다수의 욕망을 적절하게 만족시켜 주는 일은 성인군자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춘추시대 제나라를 패권국으로 올려놓은 명재상 관중은 자신이 죽을 때 후임으로 절친한 벗이자 도덕적으로 고결했던 포숙을 추천하지 않았다.
제환공은 포숙을 재상으로 삼으려 했으나, 관중은 포숙의 도덕적 고결함이 당시 제나라 정치현실 속에 큰 갈등과 분쟁을 일으킬 것임을 알고서 제환공을 만류했던 것이다. 관중이 이 때 남긴 말이 “수지청즉무어(水之淸則無魚),” 즉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는 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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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춘추시대의 첫 패자,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과 그의 벗 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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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 선거 현실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몽테스키외가 우려했던 것처럼 민의가 좌우하는 삼권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삼권에 민의가 직접 관여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결정적 방편인 선거 역시 교활한 정치공학의 주요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민주주의의 세부 절차를 신봉한 나머지 그 원래 목적인 천부인권, 행복 추구의 자유, 그리고 기회의 평등을 망각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사회 정치계의 현실인 듯하다.
서구 격언에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고 했는데, 이 말이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 현실에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인 입장에서는 선거로부터 많은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만일 요즘과 같은 대선 국면에서 교회가 선거에 깊이 관여하면 할수록 위정자들과 대중의 정치적 욕망에 휘둘리고 이용당할 뿐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신앙인 개개인은 정교분리의 신앙원리를 굳건하게 지키는 가운데, 단지 현실적으로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한다는 심정으로 투표에 참가하는 것이 온당한 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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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